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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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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무비게이션) '곤지암', 마주하기 싫은 '악몽'을 선물하다

실제하는 정신병원이란 '공간'이 만들어낸 공포

2018-03-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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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공포’ 장르는 이율배반적이다. 분명 관객 심리를 뒤흔들면서 감정의 어두운 면인 공포를 상승시킨다. 하지만 상승된 공포가 관객 심리를 뒤흔들지는 미지수다. 결과적으로 공포와 심리의 작용·반작용이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한다. 때문에 타깃형 상업 장르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한쪽만을 위한 ‘마니아’적 요소가 강한 장르가 바로 ‘공포’다.
 
 
 
이 같은 명제를 전제로 출발하면 영화 ‘곤지암’은 자극의 내성적인 측면에선 ‘미지수’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포에 익숙하지 않다면 ‘곤지암’은 공간이 만들어 낸 공포의 여러 얼굴을 담고 있는 ‘마주하기 싫은 악몽’이 될 수 있다. 더욱이 그 공간이 실재하는 곳이라면 사실상 ‘관람’이 아닌 ‘체험’이 된다. 이건 공포 영화가 관객을 몰아갈 수 있는 끝판이다.
 
먼저 무대가 된 공간은 실제로 경기도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곤지암 정신병원’이다. 영화 속에선 실존한 공간이 아닌 ‘가상의 배경’으로 설정됐다. 이미 온라인에도 퍼진 괴담이 난무하는 곳이다. ‘1970년대 후반 환자들이 집단 자살을 했다’, ‘병원장이 실종됐다’, ‘국가의 비밀 생체 고문 시설이다’, ‘일제강점기 독립군 유해가 집단으로 매장된 곳 위에 지어진 건물이다’ 등등. 더욱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 병원 ‘402호’는 열리지 않는 공간이다. 그 곳을 열려고 하면 반드시 목숨을 잃고 살아서 병원을 빠져 나온다 해도 자살을 할 수밖에 없다는. 물론 모두 괴담이며 영화 속 설정이다. 반대로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고 실제로도 온라인에 퍼진 괴담일 뿐이고.
 
영화 '곤지암' 스틸. 사진/쇼박스
 
이 모든 것이 영화 ‘곤지암’의 모티브가 됐다. 스토리는 아주 간결하다. 공포체험단 ‘호러 타임즈’ 멤버들이 한 밤 중에 이 병원에 잠입해 괴담 실체를 네티즌들에게 공개한다. 자신들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 동시 접속자 증가를 노리며 광고 수익을 얻는다. 그들의 체험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생중계 된다. 이 세 줄로 압축된다. 이 간결함이 반대로 ‘공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을 함정에 몰아넣는다. 앞서 설명한 ‘타깃형’ 관객 설정이다. 모든 관객들에게 ‘공포의 재미’를 선사할 수 없다면 반대로 공포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 다수를 대상으로 하겠단 전략이다. 물론 공포 마니아들조차 수긍한다면 1석 2조다.
 
우선 촬영 자체가 ‘페이크 다큐’ 혹은 ‘파운드 푸티지’ 기법으로 구성돼 있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촬영 방법이다. 1999년 전 세계에 개봉해 신드롬을 일으킨 할리우드 영화 ‘블레어 위치’가 이 촬영 기법의 교본 같은 작품이다.
 
영화 '곤지암' 스틸. 사진/쇼박스
 
‘곤지암’은 두 가지다. 인터넷 실시간 중계 그리고 인물들이 몸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공간을 누비는 시점 샷으로 구성돼 있다. 관객이 이들의 체험을 실시간으로 관람하는 네티즌이며 인물 그 자체가 되는 셈이다. 6종류 19대 카메라가 잡아낸 장면은 점층적으로 공포 지수를 끌어 올린다. ‘체험’으로 시작된 이들의 ‘이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장르적 장치 함정으로 빠져 들어간다. 기존 상업 영화 연출이라면 관객에게 예측의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곤지암’은 앞서 설명한 두 가지 장치를 활용하기 때문에 이 같은 시간 차이를 줄여버린다. 특히나 공포 영화 클리셰(장르적 활용 장치)를 전면 배제했다. 슬픔 복수 원한 등의 감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등장하는 인물들의 체험만 존재한다. 그 체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관객들의 체험으로 변화된다. 결과적으로 인물들의 불안, 비명 그리고 공포는 관객들의 그것으로 오롯이 안겨버린다.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 그 자체가 바로 관객들의 '그 것'인 셈이다.
 
이 같은 작용·반작용 효과는 공포와 호러 영화 전매특허인 강렬한 효과음이 배제됐기 때문에 더 강하게 다가오는 장점을 발휘한다. 기분 나쁜 파열음, 기괴한 음향 효과는 ‘곤지암’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현장에서 흐르는 공기의 흐름 나직한 숨소리, 캐릭터의 심장 박동 소리가 전부다. 초반 인물들의 박장대소마저 긴장감을 깨는 장치로 들리지만 그것마저도 반대급부 효과를 노린 듯 클리셰로 다가오는 것도 ‘곤지암’ 자체의 영민한 계산으로 다가올 정도다.
 
영화 '곤지암' 스틸. 사진/쇼박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전부 차치하고 ‘곤지암’의 사실감을 높인 점이라면 생경한 인물 캐스팅일 것 같다. 평범해 보이는 20대 남녀가 점차 괴담의 실체와 마주하면서 기괴한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실제로 믿게 하려면 익숙함이 배제돼야 했다. 출연 배우 모두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신인들이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곤지암’은 신선하고 사실감 넘친다.
 
톡톡 튀는 탁구공마저 공포의 장치로 활용한 ‘공포 대가’ 정범식 감독의 치밀한 계산도 섬뜩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섬뜩함은 아주 단순하다. 어떤 감정도 배제한 채 ‘공포’ 단 한 가지에만 집중한 점이다.
 
영화 '곤지암' 스틸. 사진/쇼박스
 
‘곤지암’, 섬뜩함 하나로만 따지면 ‘심약자 관람불가’ 수준이다. 개봉은 오는 28일.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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