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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정

(피플)"'3선보다 영선', 첫 여성 서울시장 되겠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 "도시서울을 크게 보고 그릴 새 인물 필요하다"

2018-03-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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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차현정 기자] 문화방송(MBC) 재직 시절 ‘사상 첫 여성 특파원’, ‘첫 여성 메인앵커’, ‘첫 여성 경제부장’을 지냈다. 2004년 정치 입문 후엔 ‘헌정 사상 첫 여성 법제사법위원장’과 ‘새정치민주연합 첫 여성 원내대표’가 됐다. ‘여성 최초’ 타이틀만 수 차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다. 이제 ‘첫 여성 서울시장’이라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준비하는 그가 고백한다. 축적의 시간이 길었노라고. “600년 서울 역사에 경고등이 켜졌다. 처음으로 쇠퇴 길에 접어든 거다. 이대론 문재인정부가 위험하다. 그래서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 정치인생에서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정의’와 ‘공정’을 서울시정에 관철해 실현할 때라고 그는 말한다. <뉴스토마토>는 박 의원의 출마선언 사흘 전인 지난 15일 ‘서울시장 예비후보 릴레이 인터뷰’ 세 번째 주자로 동행 취재했다.
 
“비 내리는 연대 캠퍼스입니다.”
 
15일 오후 3시50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대강당에 쨍한 파란색 수트 차림의 박 의원이 이 말과 함께 등장한다. ‘4차 산업혁명사회와 리더십’을 주제로 한 다섯 번째 강연 ‘박영선, 청춘을 만나다’에서다. 강연 시작은 4시인데 500여명의 대학생들로 강당은 이미 꽉 찬 상태였다. 강연이 한 시간 반 넘게 이어지는 동안 학생들의 눈이 빛난다.
 
어느덧 오후 5시 반. 강연은 마쳤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손 든 학생들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하느라 30분을 더 할애하고 나서야 마침내 마주할 시간이 생겼다. “원래는 지난 연말 서울대학교와 숙명여대 강연에서 끝내려던 일정이었는데 다른 대학에서도 요청이 이어져 릴레이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현 시대 당면과제인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죠.” 학생들은 박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로봇기본법(로봇에 전자적 인격체의 지위를 주는 내용이 골자)을 놓고도 여러 질의를 쏟아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15일 연세대학교에서 '4차산업 혁명 사회와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박영선 의원실
 
이날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다음날이었다. 박 의원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그동안 이 전 대통령을 향한 날선 발언들로 ‘MB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은 터다. 박 의원에겐 관련 소회를 묻는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2007년 6월11일입니다. 제가 다스 문제를 처음 제기한 날이. 많이 늦은 겁니다. 사실 ‘MB가 과연 법정에 서는 일이 올까’ 의구심도 계속 있었어요. 그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죠. ‘신은 진실을 알지만 때를 기다린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제목이기도 한 이 어구를 박 의원은 11년째 인용한다고 했다.
 
촬영취재진은 일찌감치 자리를 떴는데 누군가 강당 뒤편에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박 의원 남편 이원조 미국변호사다. ‘어떤 조력자냐’는 물음에 이 변호사는 “그림자 외조도 않는 남편”이라며 연신 손사래를 쳤지만 일정까지 따라나서며 사진 촬영을 마다 않는 열혈 애처가다. “남편은 정치와 선을 긋고 싶어 합니다. 아내인 제가 집에서도 일로 전화를 내려놓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본인까지 나서면 머리 아파진다는 이유에섭니다.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가장 고마워요. 가끔 집에서 통화가 길어질 때 빼고요. ‘빨간 공중전화 부스를 사줄테니 그 안에서 지내’라고 합디다.”
 
오후 6시20분. 수행원이 눈치를 줬다. 오후 7시부터 시작하는 민주당 강서갑지역위원회 임시지역대의원 대회 참석 일정이 갑자기 잡히면서다. 우장산동 주민센터로 이동하는 박 의원 차에 동승했다. 시간에 쫓겨 저녁은 거른다. ‘이동 사무실’격인 차량 안에 있는 건 생수 한 병이 전부. 오랜 강연에 진이 다 빠졌을 법 한데 지친 기색이 없다. “집중력으로 버틴다”는 그다. 연세대 캠퍼스를 빠져나가면서 문득 ‘78학번 여대생 박영선’이 궁금했다. 그는 “좌절감이 컸던 시기”라 했다. 대학시절 내내 아버지로부터 등록금을 받지 못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장학금에만 매달렸단다. 연희동에서 나고 자란 그가 근처 학교(연세대)에 못 갔단 이유에서다. “아버지는 딸이 134번 버스 다니는 좋은 학교 다 두고 구석에 있는 학교(경희대) 다닌다고 구박하셨어요. 여느 여대생의 삶과는 달랐을 겁니다. 이 악물고 공부한 덕분에 지금껏 살아왔지만요.” 대학 시절 박 의원이 전공한 건 지리학이다. 대학서 전공을 했을 뿐이니 엄밀한 의미의 도시지리학자는 아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건 연습이었다.
 
“작년 12월 겨울, 한 보고서를 봤는데 서울이 쇠퇴하고 있었어요. 서울의 경제 성장률은 전국 성장률에 못 미치는 데다 출산율은 전국 꼴찌죠. 30~40대 젊은이들이 한 달 평균 1만2000명이 서울을 떠나는 현실입니다. 600년 서울 역사가 처음으로 쇠퇴의 길에 들어선 겁니다. 제가 전공한 것이 도시지리학인데요. 쇠퇴기로 접어든 지금을 바로 잡지 않으면 20년을 잃습니다. 잃은 만큼 다시 되돌리는데 걸리는 20년까지 계산하면 미래 반세기가 위태해집니다.” 실제 지난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전국 평균이 1.05명인 반면 서울의 경우 역대 최저인 0.84명이다. 또 작년 12월 통계청 발표를 보면 서울의 성장률은 2.0%로 전국 평균 성장률인 2.8%를 밑돈다. 서울 엑소더스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4년 간 서울을 떠난 30~40대는 총 55만명에 달한다. “서울은 새 에너지와 새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도시를 큰 눈으로 보고 그릴 새 사람이 우선돼야 합니다. 첫 여성 서울시장이 되겠습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번지는 미투(Me too) 운동은 여성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시대적 과정입니다. 남성과의 싸움이 아닌 차별화에 대한 저항이죠. 21세기형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입니다.”
 
지금의 답보 상태 지지율이 걱정되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지지율이라는 건,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까지 꾸준히 오르지만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것은 고비가 아닐 수 없어요. 하지만 축적의 시간을 이어간다면 ‘팍’하고 발화가 될 거라고 봅니다.”
 
오후 7시. 우장산동 주민센터에 도착하니 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박영선 의원님 오셨다. 앞으로 큰 일하실 분이다”라고 당원들에 소개하며 박 의원을 반긴다. 지원유세를 나온 당내 경쟁자 우상호 의원 아내도 보인다. 이어 송영길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정권을 뺏긴 지난 시기는 스스로 반성하던 시기였다. 2000년부터 정치를 시작해 그렇게 무너져 내린 적은 없었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선 내가 필요한 곳 어디라도 가서 도와 승리를 기원하겠다”고 외쳤다. 박 의원도 단상에 올랐다. “나는 이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다”고 입을 떼자 박수가 쏟아졌다.
 
다시 이인영 의원 지역구인 구로갑 대의원대회 참석을 위해 채비를 서두르는 그에게 ‘당원은 박 의원에 어떤 존재냐’고 물었다. “오랜 시간 민주당을 함께해온 당원은 내게 가장 큰 조력자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대변인을 맡았고 이후 모든 선거들, 지방선거와 대선, 총선 등등 총 12번의 선거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민주당의 승리만을 위해 뛰었습니다. 작년 대선 때 선거지원 유세 이동거리만 서울~부산 23회 왕복거리였죠. 그때 함께 한 당원들이 지금 저를 돕고 있습니다. 밑바닥 민심은 3선(박원순 현 시장)보다 영선이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박영선 의원이 18일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선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차현정 기자 ck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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