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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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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걸으며

2018-03-20 06:00

조회수 : 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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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이 달구벌(‘달구벌’은 대구의 옛 지명이다)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신천(新川)의 겨울을 완전히 밀어내고 있었다.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을 뚫고 찾아온 봄바람도 강을 맴돌다가 수성교로 올라와 방천시장 쪽에 이르러서는 훈풍으로 속삭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라는 노래를 부르던 가수 김광석(1964-1996)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내가 그곳에 위치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찾은 것은 3월 중순으로 향하는 어느 일요일 낮이었다. 이곳은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는 인연으로 조성된 골목길이다.
 
초·중·고를 대구에서 다닌 내가 다시 이곳 방천시장을 찾은 것은 무려 37년만의 일이었다. 방천시장 안에 친척집이 있어서 가끔씩 이곳에 들렀기에 그때의 추억과 기억을 떠올리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수 김광석의 체취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고 있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에는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동상을 비롯한 고인의 갖가지 모습을 그린 그림과 글이 세상에 남겨진 그의 흔적과 함께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노래는 삶에 지친 우리에게 안식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예술의 한 장르다. 우리의 감성이 노래와 만나면 적지 않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그것은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노래가 갖는 중요한 기능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대중가요는 그 가사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접근성이 수월한 장점을 가진다. 청각을 통해 바로 받아들인 가사와 곡이 쉽게 우리의 가슴에 자리 잡는다는 뜻이다.
 
특히 김광석의 노래는, 서정성 높은 아름다운 가사를 누구라도 편하게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들에게 주는 행복감은 남다르다. 비록 슬픈 가사를 담은 노래가 많이 있기는 하지만, 슬픈 가사라도 나름대로의 매력으로 삶에 지친 우리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처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이별을 담담하게 삶의 한 단면으로 끄집어내서 같이 슬퍼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은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것이 대중가수 김광석, ‘노래하는 철학자’ 김광석이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회자되는 중요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그날들’, ‘사랑했지만’,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나의 노래’,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주옥같은 노래들은 시간이 흘러도 오랜 생명력을 가지는 명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 분명하다.
 
그날 본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그리 넓지도 않고 그리 크지도 않은 공간일 수도 있다. 규모는 폭 3.5미터에 길이 350미터 정도다. 화려하지도 않다. 다른 관광지와 비교하면 오히려 수수한 느낌이다. 보통 걸음으로 구경하고,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옆에 위치한 ‘김광석 스토리하우스’까지 둘러본다고 해도 두어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이런 점이 더 매력인지도, 더 정감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른다. ‘김광석’ 이라는 대중가수의 삶과 우리의 옛 정서를 추억하게 하는 골목길 풍경이 어우러졌기에, ‘한국 대표 관광지 100곳’ 에 선정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이 거리를 걸으며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곳이 이제 대구의 명소,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기존의 방천시장과의 조화이다. 방천시장은 해방 이후 생긴 70년이 넘는 전통의 재래시장이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로 그 위상과 그 역할이 밀려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이 아니리라. 그날 나와 동행했던 대구 토박이들의 걱정 어린 조언도 그런 맥락과 동일하다. 유명한 대중가수의 삶과 그 유산이 전통시장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공존을 기대해본다. 유형, 무형의 정신적 유산은 그 나라의 문화 자산에 중요한 뿌리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최근까지 불거진 그의 사인(死因)과 그의 노래를 둘러싼 유족들 간의 불협화음도 해빙의 계절처럼 아름다운 결실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의 노래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나와 서울행 기차를 타러 가는 나를 줄곧 붙잡는 듯한 날이었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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