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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모' 핵심 우리법연구회 법관들 고립시켜야"…블랙리스트 사실상 존재

추가 조사위 조사결과 발표…가정사까지 파악·단독판사회의 의장도 '관리' 대상

2018-01-2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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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진보적이거나 비판적인 특정 법관들의 신상과 동향을 파악해 유지·관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관 블랙리스트’에 대한 명시적 증거는 없지만 사실상 그에 준한 ‘관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원 추가 조사위원회는 22일 지난 해 11월20일 출범한 뒤 조사해 온 결과를 법원 내부게시판인 ‘코트넷’을 통해 발표했다.
 
추가 조사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사법 불신에 대한 대응, 사법행정 목적의 달성, 법원장의 사법행정권 행사 보완 등을 이유로 가능한 공식적, 비공식적 방법을 모두 동원해 법원의 운영과 법관의 업무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영역에 관해서도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관리했다. 그 역할은 핵심 부서인 기획조정실에서 대부분 수행했다.
 
이번 추가 조사에서 법원행정처가 집중적으로 ‘관리’한 것으로 보이는 주요 법관은 총 10명 안쪽이지만, 이 중 일부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우리법연구회 출신과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까지 분류한 것으로 볼 때 ‘관리’된 법관은 그 이상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는 우선 2016년 1월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모임에서 사법행정위원회 개선을 요구한 송모 판사를 지목해 분류하는 과정에서 당시 회의에 참석한 법관들을 명단을 기재한 뒤 그 중 우리법연구회 전 현 회원들을 밑줄로 구분했다. 이어 송 판사의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경력, 사법행정에 대한 관심사 등을 사진과 함께 첨부해 기재했다.
 
또, 그 다음달에 개최 예정인 인사모 모임에 참석이 예상되는 법관들을 명단을 기재한 뒤 핵심그룹으로 우리법연구회의 부장판사 6명, 평판사 5명,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부장판사 1명의 이름을 기재했고, 주변 그룹으로는 우리법연구회의 판사 1명,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판사 9명의 이름을 적시했다.
 
이어 “핵심 그룹의 조직적 활동에 대한 대응 방안과 관련해 ‘치밀한 대응 방안을 사전에 마련하는 것을 통해 소수 핵심 그룹의 조직적 활동이 다수 일반 판사들의 호응을 얻는 것을 차단하고, 핵심 그룹을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는 필요성이 제시된다”는 지침도 함께 제시했다.
 
추가 조사위는 “문건에 핵심 그룹과 주변 그룹의 구체적인 분류 기준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다만 핵심 그룹은 주로 우리법연구회 전·현 회원이고, 주변 그룹은 주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원들이라는 취지가 기재돼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적인 법관의 동향도 파악해 관리했다. 추가 조사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2015년 8월 차모 판사가 코트넷에 올린 ‘사실심 충실화 관련 판사 수 대폭 증원과 상고제한 추진 의견’이라는 글이 주목받자 차 판사의 주장이 공론화 될 경우 상고법원 입법전략에 피해가 클 것이라고 판단하고 ‘관리’에 들어갔다. 차 판사의 성격과 스타일, 재판 준비태도는 물론, 고민하는 테마의 내용, 독일 유학 복귀 후의 동향, 일과 관련된 가정사 등 사적 영역까지 파악해 정보를 유지했다.
 
법원행정처는 차 판사가 이 같은 내용을 칼럼으로 정리해 언론에 투고하자 법관윤리강령에 위반되는 지 여부까지 검토했다. 다만 검토 결과 차 판사의 행동이‘부적절한 행동이지만 법관윤리강령 등 위반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면서도, 차 판사의 언론활동과 문제제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그의 행동을 예의 주시했다.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이었던 박모 판사도 ‘관리’ 대상이었다. 법원행정처는 당시 대법관 제청결과에 대한 각계 반응을 정리하면서 ‘박 판사가 단독판사들과의 식사자리 등에서 이 주제에 관해 일체 언급이 없었다’, ‘박 판사의 학생운동 경력과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측면 등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추진 중인 좋은 재판연구회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는 취지를 기재하는 등 박 판사의 동향을 파악·유지했다.
 
이번 추가 조사위 조사에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은 <박○○ 판사 동향 파악>이라는 문건을 파일로 작성해 유지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조사 당시 문건이 이미 삭제돼 내용은 복구되지 않았다.
 
추가 조사위는 이날 “이들 문건들은 사법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법관들의 활동에 대응할 목적으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들이 작성하여 보고한 문건들로서 인사나 감찰부서의 필요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정연구회 소속 법관들을 핵심그룹으로 분류해 그 활동을 자세히 분석하고 이념적 성향과 행태적 특성까지 파악하여 대응 방안을 마련한 것도 법관의 연구 활동에 대한 사법행정권의 지나친 개입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추가 조사위는 이날 “이번 추가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가 정당한 절차 없이 특정 법관들에 대한 동향을 파악하거나 성향을 분석한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고 밝히고 “다만, 대응방안 실행여부 등은 조사범위에 해당하지 않아 조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법관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개념에 논란이 있으므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추가 조사결과를 보는 법조계 등은 매우 우려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사실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외부에서의 사법부에 대한 압력이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의 압력이나 판사 스스로의 권력에의 ‘줄대기’”라면서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성향 등을 수집하고 분석했다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침해하는 것으로서 향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추가조사위원회가 확인한 문건들의 내용이 실제 실행되어 판사들의 재판이나 활동에 불이익을 주었는지 등에 대해서 더 밝힐 필요가 있다”며 “이제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7월24일 오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2차 전국법관회의에서 판사들이 회의실 입장을 하고 있다. 이날 법관회의에서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거부한 '사법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 사법행정권남용 책임규명 요구, 사법행정권 남용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대책 등이 논의됐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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