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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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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무비게이션] ‘공동정범’…국가에게 묻는 진실과 책임

국가 폭력·인간성에 대한 살아 있는 질문

2018-01-17 10:52

조회수 : 4,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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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2009년 1월 20일 사건 발생 2분 10초 전. 몇 사람이 나누고 있는 무전 교신 내용이 들린다. 스크린에는 한 폐건물 옥상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슬레이트 가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에는 직격탄에 가까운 물대포가 집중됐다. 언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를 것 같다. 그리고 ‘사건 발생 2분 10초 전’이란 경고 문구의 시간이 모두 흘렀다. 위태로웠던 가건물 인근(정확하게 내부인지 외부인지는 화면으로도 판단 불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가건물 내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아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행위 자체로만 판단하자면 ‘살려달라’는 구원의 신호였다. 이 모든 상황은 연출이 아닌 실제다. 이날 발생했던 사건. 전국민에게 참사로 기억된 ‘용산 참사’의 현장 모습이다.
 
 
당시 사건으로 용산 철거민 5명과 진압 작전에 투입된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이른바 ‘참사 시위’에 참여한 용산 철거민과 전국 철거민 연대 소속 25명은 형사 처벌을 받게 됐다. 그들은 시민에서 철거민 그리고 범죄자가 된 것이다. 국가는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숨진 것을 이유로 들었다.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공동으로 실행한 사람. 또는 그 행위’란 법률까지 들이 밀었다. 살아 남은 그들은 ‘단지 현장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모두 ‘공동정범’이 됐다. 확실한 화재 물증과 사망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채 말이다.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은 그 지점부터 출발한다. 물론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달랐다. 6년 전 전국 7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용산 참사 다큐 ‘두 개의 문’ 스핀 오프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 내용은 참사 현장에서 살아 남은 이들의 갈등이었다. 그 대상은 공교롭게도 국가와 특정 세력이 아닌 함께 그곳에서 생존을 외쳤던 동료들이었다. 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
 
106분 러닝타임에는 총 5명의 참사 현장 생존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같은 상처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삶이 파괴됐다. 일상이 사라졌다. 감정은 바르지 못했다. 사라진 삶은 그들의 내면까지 철저히 짖밟았다. 누군가는 그들의 모든 것을 앗아간 책임을 져야 한다. 더욱이 사람이 죽었다. 눈앞에서 죽음을 목도한 그들은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됐다. 상황을 만들었다. 살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남은 것은 책임 뿐이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가해와 피해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었다.
 
다큐 '공동정범' 스틸. 사진/연분홍치마 제공
 
‘두 개의 문’은 사법 당국의 조사와 경찰 진술을 토대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재구성의 방식을 택했다. ‘공동정범’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지점에 시선을 뒀다. 앞서 설명한 모든 것이 담길 수 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생존자들은 서로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있었다. 한 생존자는 “그때 내가 그 곳에 올라가지 않았다면?”이란 자문을 한다. 행위의 결과만 남았고 과정과 시작은 사라진 채 말이다.
 
연출(사실 기록이며 추적이고 시선이다)을 맡은 김일란 이혁상 감독은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극악한 상황을 가감없이 담았다. 모든 상황은 대체로 한 가지였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았을 때 피해자들은 어떤 피해를 입게 될까.’
 
결과적으로 ‘공동정범’은 살아 남은 5명이 시간이 지나면서 뒤틀리고 변질되고 왜곡된 기억을 통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는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이 시선은 사실 조금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공동정범’은 “대체 국가란 무엇인가”란 날 선 질문을 국가에게 던진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인간은 무엇인가”란 진실이 담겨 있었다. 페허로 돌변한 그들의 삶의 터전에는 아직도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란 플랫카드는 ‘국가’란 합법적 집단이 그것을 이루는 가장 본질적인 단위 체계에 어떤 식으로 폭력을 행사하는지를 말이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국가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이 벌이는 살인 행위이며 그것보다 더욱 잔인한 인격 말살의 현장이었다.
 
다큐 '공동정범' 스틸. 사진/연분홍치마 제공
 
스스로도 이제 시작을 모를 분노를 누르기 위해 한 사람은 화초를 기른다. ‘말이 없기에 편하다’는 이유가 처연하게 스크린을 찟고 나왔다.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어린 딸에게 “아빠 범죄자야”란 말을 들었다면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참사 당시 아버지를 뒤에 두고 먼저 살기 위해 뛰쳐 나온 한 사람은 책임이란 굴레 속에 인생을 저당잡혔다. ‘왜 자신만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나’라며 참사를 온 몸으로 겪은 또 다른 사람은 날 선 화살을 ‘참사’를 함께 겪은 동료에게 쏘아댔다. 그들 스스로 모두가 시작도 끝도 과정도 기억 속에서 저마다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재구성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들은 버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힘들다. ‘공동정범’ 속 5인은 그렇게 실낯 같은 생의 줄기를 잡고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자와 그 위에 선 국가. 그들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그들은 좀 더 높은 곳으로 그렇게 계단을 밟고 올라서고 있었다.
 
‘공동정범’은 그렇게 묻는다. ‘도대체 국가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개봉은 오는 25일.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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