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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

(가상화폐 규제 한 달)②닷새에 1번꼴 쏟아낸 대책 다 '제각각'…"한마디로 중구난방"

부처별로 설익은 대책 내놓으며 우왕좌왕…투자자들 '혼란'

2018-01-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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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양진영 기자] 정부의 최근 한달간 가상화폐에 대한 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중구난방’이다. 5일에 한번 꼴로 6번이나 정책을 발표하거나 각 부처 장관들이 입장을 표명했는데 모두 온도가 달랐다. 해킹·개인정보 유출 예방, 미성년자 거래 금지 등 시장 조성으로 방향을 잡나 싶더니 보름도 지나기 전에 ‘조건부 인정’이라는 애매한 조항을 덧붙이며 가상화폐 거래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바로 다음 날에는 거래소 신규 회원 가입을 금지시키더니 이번 달에는 가상화폐 거래 은행 현장점검과 함께 거래소 폐쇄라는 강경책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TF 주부부처 장관이 관계부처 논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거래소 폐쇄 법안 추진을 발표했다가 다음날 청와대가 수습에 나서는 코미디도 펼쳐졌다. 이처럼 줏대없는 정부의 입장 변화는 제도권 밖이라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가상화폐 시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13일, 국무조정실장 주재 아래 기획재정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 차관 회의를 갖고 ‘가상통화 관련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 발표의 초점은 ‘소비자보호’였다. 가상화폐 거래자체의 금지보다 거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범죄 및 소비자의 피해를 막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
 
먼저 비트코인거래소 해킹사건, 가상화폐 ‘이더리움’ 투자금 편취사건, ‘비트코인’ 이용 신종 환치기 사건 등 당시 수사 중인 ‘범죄’ 들에 대해 원칙적으로 구속수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4개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를 포함한 거래소의 약관심사 불공정여부에 대해 직권조사 실시하고 피해 사례가 속출하는 해킹·개인정보 유출사고 예방을 위해 거래소를 주기적으로 점검해 정보통신망법 위반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투명한 거래와 자금세탁방지 차원에서 은행이 거래자금 입출금 과정에서 이용자가 본인임을 확인하고 이용자 본인계좌에서만 입·출금되도록 관리하는 방안도 덧붙였다.
 
특히,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던 고교생 및 미성년자의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고 해외에 비해 높은 시세를 노리는 외국인의 유입을 막기 위해 비거주자 계좌 개설 및 거래 금지조치를 추진하는 등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투기의 장이 되지 않도록 이끌었다.
 
당시 거래소를 비롯한 시장의 반응은 ‘당연히 예상했던 결과’였다. 건전한 시장 형성을 위해 필요한 정부의 정책이라는 데 공감한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같은 날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 ‘예외적 허용’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가상화폐 거래행위를 유사수신업으로 규정해 원칙적으로는 불법화하되, 거래소의 투자금 별도 예치, 설명의무 이행, 이용자 실명 확인,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 등을 충족할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당시 내걸은 조건들은 대형 거래소들의 경우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이었던 까닭에 시장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여기에 27일, 정부의 2018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가상화폐와 관련 주요국 과세 사례와 세원파악 수단 등을 검토해 구체적인 과세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며 사실상 가상화폐의 ‘제도권 도입’이라는 해석이 이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바로 다음 날 ‘가상통화거래 실명제’를 발표하며 규제 방향으로 입장을 급전환했다.
 
정부의 발표에는 ▲가상통화 거래소에 대한 가상계좌 신규 발급 전면 중단 ▲기존 가상계좌 거래소의 신규 회원에 대한 가상계좌 제공 중단 ▲기존 가상계좌 이용자의 계좌이전 작업(이용자·거래소 은행 일치작업)이 포함되며 신규거래자 유입이 차단됐다.
 
금융위와 함께 가상화폐에 대해 강경한 법무부도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보름도 안되는 사이 손바닥 뒤집듯 바뀐 정책은 투자자들을 ‘멘붕’에 빠뜨렸다. 정부가 설명한 이유는 ‘투기근절’이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직접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는 정부는 거래소와 계약한 은행권에 눈을 돌렸다.
 
지난 8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가상통화 취급업소 현장점검에 대한 입장발표에서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실태와 실명확인시스템 운영현황을 점검하고 적발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놓고 은행권 대한 우회적인 압박에 들어간 것이다.
 
이어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일 신년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목표로 관련 법안을 준비중이라고 발표하며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는 최고점을 찍었다. 법무부는 가상화폐 열풍에 대해 2000년대 중반 전국을 휩쓸었던 도박 게임 ‘바다이야기’보다 10대 위험하다고 정의했다.
 
박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대표적인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비롯해서 대부분 가상화폐들이 급락하며 혼돈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다음 날, 청와대의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조율되지 않은 것’이라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정책 뿐만 아니라 가상화폐에 대한 주무부처 변동도 가상화폐 시장의 혼란을 부추겼다.
 
지난달 4일 가상화폐 TF는 가상화폐가 금융상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융위원회에서 법무부로 주무부처를 이관했다. 금융위는 가상화폐 제도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거듭 밝히며 이에 대해 손을 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주무부처까지 내놓은 금융위는 정작 가상화폐 대응 전담팀을 꾸리고 이번 달부터 길면 3개월 동안 운영한다는 방침을 내놓으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주무부처의 장인 박 장관이 관계부처와 교감 없이 독단적으로 거래소 폐쇄라는 중대안 사안을 발표하고 청와대에서 수습하는 모습은 법무부가 컨트롤타워의 담당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비판을 사기 충분했다.
 
때문에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바라고 있다.
 
신원희 코인원 최고운영 책임자는 "예외적 운영을 허가한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은행권을 비롯해 가상화폐 시장에서 실명제를 준비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거래소 폐쇄를 언급하고 있다"며 "가상화폐에 얽힌 규모가 자금만 해도 몇 백조, 사람도 몇 백만명이 되는 만큼 중구난방식 발표가 아니라 중요성을 인식해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양진영 기자 cam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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