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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신년 기자회견, 과거와 달라야

2018-01-09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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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초 대통령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신년사와 신년기자회견일 것이다.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한 해 국정계획을 발표하고, 뒤이어 기자들을 만난다. 기자회견의 목적 중 하나는 언론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일(10일) 청와대 경내로 기자들을 초청해 회견을 할 예정이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언론의 유사어로 우리는 미디어(media)라는 말을 자주 쓴다. 미디어란 본래 ‘중재’, ‘매개’의 의미를 지닌다. 미디어는 청와대와 국민, 정치인과 유권자 간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언론이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에 소통이 이뤄지도록 하고, 양자 사이 매개체 기능을 충실히 해야 한국정치가 제대로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은 매개체로서의 공론장 기능이 턱없이 부족하고 미디어 기능보다 오락 기능으로 전락했다.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이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하다 국민에게 외면당한 현실 앞에서도 한국의 언론은 아직도 환골탈태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특히 일부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들을 보면 언론계는 끝없이 후퇴만 하고 있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지난해 벌어진 국정농단 사태로 탄핵을 받고 형무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끝없이 이어지는 가십성 보도를 보면 저널리즘의 본분이 무엇인지 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지난 대선 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이버 상에서 가짜 뉴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문제점을 바로 잡기 위해 새 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일까. 내일 청와대 기자회견이 사뭇 기다려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프랑스에서는 지난주 수요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엘리제궁에서 신년기자회견을 가졌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언론관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주 자주 권력과 언론은 야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때때로 갑작스럽게 돌변해 적대관계가 된다. 이때 민주주의의 위엄은 크게 손상된다. 따라서 언론계와 ‘건전한 거리(une saine distance)’를 유지하고자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한 가짜뉴스(Fake news) 퇴치를 위한 법률을 제정할 의지를 밝혔다. “선거철 인터넷상의 페이크 뉴스를 단속하기 위한 법률안을 만들겠다. 우리는 가짜뉴스로부터 민주주의의 활력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상 장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기본방침은 광고주와 그들을 컨트롤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공개하기 위해, 모든 스폰서에 대해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을 의무화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의 두 언론사, RT와 Sputnik가 지난 프랑스 대선 캠페인 동안 “세력기관…그리고 과대 프로파간다 조직처럼 행동했다”고 비난했다. “SNS의 수많은 계정을 통해 이 프로파간다는 순식간에 세계로,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과장돼 정치 책임자, 유명인, 공인, 기자 등을 모욕하고 태형을 가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가짜 뉴스가 번성하는 경우 문제가 되는 내용을 법률적으로 판단해 사용자 계정을 폐쇄하고 인터넷 사이트에 접근하는 것을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인터넷 플랫폼과 보급자들의 책임감을 고취시키도록 환기하고 기자들이 관련 기사 작성 시 직업정신에 입각해 심사숙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직업정신에 충실한 ‘국경없는 기자회’를 참고하는 것은 유익하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흥미 있는 발표는 ‘공공방송에 관한 법안’을 올해 연말 안에 국무회의에서 공개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2018년 1분기 말까지 시나리오를 구축해 공유하고 구조화된 명제로 공개할 것이다…우리는 이에 대해 전문가들과 함께 폭 넓게 토론을 나눌 것이다.”
 
그는 “공공방송은 국민결속력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이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하나의 거울이다. 그러므로 국민 모두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할 것을 목표로 삼고 실행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의 공적 사명이다”라고 언론의 존재 이유를 강조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언론을 가볍게 다뤄 군사기밀을 기자들에게 누설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위엄을 상실한데서 큰 교훈을 얻은 마크롱 대통령은 언론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언론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내일 신년기자회견을 과거 정부와는 달리 획기적인 역사의 한 장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새 정부의 언론관을 확실히 밝히고 한국 언론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는가. 신년이면 기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모아 의례적인 환담이나 나누던 지난 정부들처럼 귀중한 시간과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지 말고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되짚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언론은 이미 오랫동안 방향을 잃고 저널리즘의 기능을 상실했다. 언론이 이러한 길을 계속해서 간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위엄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고 말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한국 언론이 나아갈 방향과 정책을 밝혀주길 바란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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