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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차기태의 경제 편편)환율 2067원의 추억

2017-1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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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겨울이라 추운 것은 당연하지만, 마음까지 추웠다. 뜻하지 않게 닥쳐온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이 나라 국민 모두가 벌벌 떨었다. 그야말로 엄동설한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의 일이었다.
 
1997년 12월23일에는 달러의 현찰매도환율이 2067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사상최고 환율이었다. 특히 그날 환율이 279.50원이나 올라 모두가 경악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이 평가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투기등급으로 격하됐다. 금리도 뜀박질하더니 3개월짜리 기업어음이 연 38%를 넘어서 법정상한선에 근접했다. 하루 사이 8%포인트나 오른 것이다. 그 무렵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0억달러를 밑도는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환율은 급등했다. 말로만 듣던 ‘국가부도’가 눈 앞에 다가왔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필자는 그 당시 금융단 출입기자로서 날마다 위기상황을 전하느라 편할 날이 없었다. 많은 기사를 쏟아내는 가운데 하루하루 가슴조여야 했다. 사실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에 이르는 과정은 비극적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의 진행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종합금융사나 은행 모두 외국계 금융사들의 만기연장 거부와 외화자금 부족으로 날마다 피말리는 하루를 보냈다. 이들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대기업들도 줄줄이 부도 위기에 몰렸다. 그 과정에서 어느 금융사나 재벌기업이 만기어음을 결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보도를 자제해야 했다. 집단부도라는 수습하기 어려운 사태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정권이 바뀌고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위기해결의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부실경영의 주범이었던 종금사와 상당수 재벌기업들은 몰락했다. 대규모 실업사태도 빚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란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한 고강도 위기를 맞이한 이유는 과욕과 불투명이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의 무모한 고도성장 욕심과 재벌의 사업확장 욕심이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켜 대규모 차입경영을 유발했고, 기업체질은 극도로 허약해졌다. 1997년 부도사태를 맞이한 한보, 한라, 진로, 해태그룹은 물론이고 그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침몰한 대우, 쌍용, 동아 등등이 모두 무분별한 차입경영을 일삼았다. 대규모 중공업 공장을 지으면서 소요자금의 3분2 가량을 단기 기업어음으로 조달한 재벌도 있었다. 더욱이 이들 재벌은 하나같이 차입이나 채무보증 등 핵심 재무사항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았다. 불투명경영 그 자체였다.
 
재벌만 불투명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부와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부와 한국은행은 단기외채 같은 중요한 지표를 정확하게 알리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던 외환보유액도 사실은 허수였다. 그 실상은 가려져 있었다. 오죽하면 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당시 몇가지 공개된 지표를 이용해 단기외채 규모를 추정보도해야 했을까. 우리 국민 모두가 속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무명’(無明)과 ‘미혹’의 경제였다.
1997년 혹독한 위기를 겪은 이후 20년동안 우리 경제는 큰 대가를 치르고 많은 것을 배웠다. 고강도 위기와 구조조정의 홍역을 거치면서 재벌의 무분별한 차입경영은 금물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일부 재벌은 외환위기 이후에도 과도한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그런 재벌은 거의 예외 없이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아울러 기업과 금융사는 물론이고 정부도 투명해져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그 이후 기업들은 분기마다 경영실적을 발표하고 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과 외채현황을 비교적 실상에 가깝게 발표한다. 그 수치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제 적어도 엉터리 숫자를 함부로 내놓기는 어렵게 됐다. 국내외의 감시도 예전보다 한결 촘촘해졌다. 다시 말해 ‘무명’의 시대에서 제법 벗어난 것이다.
 
이제 그런 고강도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지만 완전한 ‘투명경제’의 시대로 진입한 것은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업과 금융사의 회계장부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여전히 크다. 대우조선 회계분식 사태는 우리 경제가 여전히 ‘투명’과는 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재벌의 왜곡된 지배구조나 총수의 전횡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우리 경제가 ‘투명’ 경제에 이르지 못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이들 재벌의 왜곡과 전횡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한국 경제에 관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반투명 경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런 반투명 상태도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장애물들을 뛰어넘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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