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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찬

(2017 벤처진단)③벤처 해외개척, 아직 걸음마 수준

벤처 75% 수출 전무…"내수경쟁 심화 속 해외시장 개척은 선택 아닌 필수"

2017-1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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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 혁신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벤처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이 필수적이다. 해외시장 개척에 성공하는 기업이 늘어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 자극을 주는 모델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벤처기업의 해외개척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015년말 기준 전체 벤처기업 3만1189곳 중 수출 경험이 없는 곳은 74.9%(중소벤처기업부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이르고, 벤처캐피탈 투자 유치를 받아보지 못한 곳은 98%에 달한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벤처기업 4곳 중 3곳은 내수형 기업으로, 해외개척을 하는 기업조차 기술력 하나 갖고 맨땅에 헤딩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벤처기업의 해외개척을 위한 투자도 크게 위축된 상태다. 27일 중기부에 따르면 벤처해외투자비중은 2012년 1.7%에서 2015년 0.2%로 축소됐다. 평균 해외투자액은 2012년 942만원에 불과했고, 2015년 50만원까지 줄어들어 벤처업체의 해외투자는 사실상 밑바닥 수준이다. 벤처기업의 매출 구조 또한 70% 이상이 대기업 B2B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해외 매출 비중은 축소되는 흐름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펴낸 '국내 벤체기업의 발전 과제와 시사점' 보고서에선 "대기업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으로 글로벌 밸류 체인에 편입하는 시장 개발 역량 확충이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해외개척이 여의치 않은 현실이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내수경쟁 탓에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개척으로 눈을 돌려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벤처기업 또는 스타트업이 유망 기술을 확보해도 국내 시장에서는 치열한 가격 경쟁 탓에 제대로 된 시장 평가를 받지 못해 고사 위기에 놓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유망 기술이 있어도 워낙 굵직한 기업들이 버티고 있는 치킨게임 양상"이라며 "가격에 민감한 시장이라 기술이 평가 절하되는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협소한 내수시장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창업 초중반부터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2004년 창업한 치과용 CT 제조기업 레이는 내수시장의 가격경쟁에서 벗어나 기술력으로 평가받는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사례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연간 매출 중 수출 비중은 97%에 이른다. 김상후 레이 기획부장은 "같은 기술이라도 국내서는 가격 경쟁으로 평가를 제대로 못받는 구조라, 정당한 평가를 해주는 미국시장에 진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레이가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기술은 월등했지만 네임밸류가 없는 벤처기업이라 시장에 신뢰를 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 부장은 "우리를 믿지 못하겠으면 장비를 무상으로 먼저 공급하겠다며 접근했고 기술력을 인정받자 테네시대학 등 유수 대학에 장비가 깔리면서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시장의 요구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성공의 중요한 덕목이다. 시장은 기술뿐만 아니라 확실한 네임밸류를 바탕으로 한 사후서비스(AS), 장기적 성공 가능성 증명 등을 요구했다. 이에 레이는 한발 더 나아가 고객서비스(CS) 조직을 강화했다. 업계 최초 사물인터넷(IoT) 도입으로 사전 서비스(Before Service), 해외 원격 지원, AS 출장 최소화 등으로 브랜드 신뢰와 입지를 구축했다.
 
아쉬운 점은 레이와 같은 해외 진출 성공사례가 극소수라는 점이다. 기술력 이외에도 시장 신뢰 확보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규제 수준이 다르며, 요구하는 인증이 제각각이라 해외 진출을 노리는 벤처기업은 대부분 정보 부족에 따른 어려움을 겪는다. 해외판로와 관련한 데이터를 분석해 시장진출 전략을 짜는 게 순서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다.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는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해외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조직 자체가 없어 해외 시장 진출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해외시장 발판을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의 해외 네트워크 활용을 위한 협업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기업 개별지원에서 플랫폼 지원으로 방향을 틀어야한다. 플랫폼은 바로 대기업이 갖고 있는 해외 네트워크 역량"이라며 "5~10년 뒤 유망 기술을 두고 벤처기업의 기술력과 대기업의 네트워크를 결합해 공동 개발하는 형태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 네트워크 활용은 스타트업 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체적인 안으로는 해외 유학생 풀을 초보 스타트업과 연계하는 방식이 있다. 벤처기업협회 다른 관계자는 "'해외 유학생 활용 스타트업수출지원사업'이라는 정책 이름으로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며 "전문 지식을 지닌 유학생을 스타트업과 연계하면 된다. 이 유학생은 일종의 해외 주재원, 통신원 구실을 하면서 현지 시장 상황, 문화, 규제 등을 조사해 스타트업에 전달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 규모는 22만명 정도다. 벤처기업협회는 예산은 중기부가 제공하고, 외교부는 유학생 데이터베이스(DB)를 제공해 협업하는 방식을 구상 중이다.
 
해외박람회 참가기회 증가 역시 판로개척에 중요한 역할을 할 하나의 대책으로 언급된다. 복수의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국내서 열리는 박람회가 아닌 해외에서 열리는 박람회가 진짜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해외에서 열리는 박람회가 유력 바이어를 만나 유통을 뚫고 판로를 개척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국내서 열리는 박람회의 경우 대부분 해외 일부 유명 업체들만 올 뿐만 아니라 해외 바이어들의 경우 관광 목적이 짙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회사를 키우기 가장 좋은 게 해외 박람회다. 기술만 있고 자본이 없는 스타트업으로서는 판로 개척을 스스로 할 수 없다. 정부가 해외 박람회 지원으로 많은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벤처창업기업들은 국내서 열리는 수출박람회보다 해외서 열리는 수출박람회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4일부터 7일까지 이란 테헤란 국제전시장에서 열린 '2017 이란 국제 전기 박람회(IEE 2017)' 모습.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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