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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협

(사회책임)‘새발의 피’ 국민연금 사회책임투자 규모 로드맵 재고를 바란다!

2017-12-11 08:00

조회수 : 2,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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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 연구 중간 결과가 지난 12월 1일, 제7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되었다. 지난 11월 15일 정책토론회를 거친 결과다.
 
연구진은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책임투자 가이드라인 제정 ▲책임투자 전략수립 ▲책임투자 조직?시스템 개선 ▲책임투자 위탁 확대 ▲위탁운용사 선정?평가 개선 ▲책임투자 BM 개선 ▲국민연금 ESG 평가모형 활용제고 ▲기업관여 ▲관련 제도 개선 등 9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관련해서는 가칭 ‘수탁자책임위원회’의 승인에 따른 주주활동 시행을 원칙으로 하는 안에 제시되었다.
 
제7차 기금운용위원회의 성과는 우선 내년 하반기까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도입 시기에 아쉬움이 있지만, 환영한다. 또 하나는 복지부가 사회책임투자전문위원회 설치 방향(안)에 대해 보고했다는 점이다. 위원 구성, 운영방식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필자가 가진 정보는 아직 없다. 필자는 지난 11월 6일 ‘사회책임투자위원회가 책임 빙자한 책임면피용이 되지 않는 조건’이라는 칼럼을 통해 나름대로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요약하면, 투자의 사회적 책임성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원칙 아래, 독립적 성격의 상시 기구가 되어야 하고, 사회책임투자위원회의 권고는 실제 투자와 주주권 행사에 반영되어야 하며, 위원들은 사회책임투자의 철학을 가지고 헌신해 온 인사가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된 사회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중, 사회책임투자 규모 확대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가 있어 짚고 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 안이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 더 나아가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의 사회책임투자를 파급하는 마중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책임투자 활성화 로드맵은 책임투자 규모를 1단계인 향후 1~2년에는 위탁운용 자산의 20%, 2단계인 향후 3~4년 25%, 3단계인 향후 5년 이후에는 30%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명확히 할 점은 여기서 말하는 ‘위탁운용’은 국민연금 모든 자산군의 위탁운용이 아니라, 또 주식운용 전체도 아니라 국내 주식이며, 그 중에서도 국내 위탁운용만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최소 향후 5년 동안은 그렇다. 로드맵은 그 사이, 2단계에서 채권에 대한 책임투자 전략을, 향후 5년 이후에는 전체 자산의 전략을 수립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또 주의할 점은 전략 수립이 곧 사회책임투자의 실행 혹은 집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로드맵에 따르면, 최소 향후 5년 동안은 그렇다.
 
국민연금이 2009년부터 가입한 PRI 즉 책임투자원칙에 따르면, 책임투자는 모든 자산운용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로드맵은 처음부터 이 원칙을 토대로 천명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향후 최소 5년 동안은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는 단지 스타일 펀드에 다름 아니다.
 
현행 국민연금법에 의하면, 주식과 채권에 대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한 근거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채권은 당장 아니더라도, 국내와 해외, 모든 직간접 주식 자산에 대해 이를 고려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발 더 물러나면 국내 주식 위탁운용 전체에, 마지막으로 또 양보하면 그 위탁운용의 사회책임투자 비중만이라도 더욱 높인 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물론 처음부터 사회책임투자 비중을 높여 운용하다가 실패하면 오히려 역풍이 불어 사회책임투자 열기를 식게 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도 존중한다. 그럼에도 현재 로드맵이 제시하는 안은 지나치게 단계적이고 보수적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적용해 따져 보자.
 
올해 9월말 기준,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자산 규모는 612조원에 달한다. 이중 국내 주식운용 규모는 127조2000억원이며, 국내 위탁운용 규모는 57조2000억원이다. 우선 현 시점 규모에 비추어 로드맵(안)의 1단계 책임투자 비중 20%를 적용하면 11조4400억원이다. 현재 국민연금 사회책임투자 규모가 2016년 말 기준 6조3700억원(국내 주식 위탁운용 규모 54조7000억원의 11.64%)인데, 2019년까지 최소 5조 이상 늘어난다.
 
대폭 증가했다고 생각되는가. 아니다. 간과한 팩트 하나가 있다. MB 정부 시절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사회책임투자 규모를 2016년 말까지 11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이미 밝힌 바 있었다는 사실이다. 진 장관 발언 당해인 2011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위탁운용 규모는 31조9000억원,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3조1000억원이었다. 9.71% 비중이다.
 
사실 로드맵(안) 1단계인 2018년~2019까지의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진 장관이 2016년까지 늘리겠다는 규모 11조보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현재 로드맵(안)이 제시하는 규모는 진수희 장관 시절 사회책임투자 규모인 3조1000억원보다 최소 3조3700억원이 더 많은 6조3700억원(이 규모는 2016년 말 기준이며, 이 때 국내 주식 위탁운용 규모는 54조7000억원으로 사회책임투자 비중은 11.64%다)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로드맵 안은 착시효과 측면이 매우 강하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올해 5월 개최된 제4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2022년을 목표연도로 하는 중기 자산배분안(2018~2022)과 2018년도 기금운용계획안을 심의?의결한 바 있다. 중기 자산배분은 5년 단위의 기금운용전략으로, 향후 5년간의 대내외 경제전망, 자산군별 기대수익률 등에 대한 분석이 반영된다. 향후 5년간 기금의 목표수익률을 5.1%로 정한 중기 자산배분안에 따르면, 국내 주식투자 총 규모는 122.6조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금운용위원회가 기금운용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금융시장 안전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고려한다는 이유로 2022년 목표 포트폴리오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국내 주식운용 위탁규모를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2012년부터 2017년까지의 국내 주식 위탁운용 증가 규모를 평균해서 추산(필자 계산으로는 연평균 약 4조6000억원 증가)해 로드맵(안)이 제시한 사회책임투자 비중을 대입해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결과, 1단계인 2019년까지 20%인 약 13조5800억원, 2단계인 2021년까지 25%인 약 19조1000억원, 3단계인 2022년까지의 30%인 약 24조3000억원이 사회책임투자 방식으로 운영된다.
 
로드맵(안)의 사회책임투자 규모에 대한 평가는 국민연금 전체 기금운용 대비 비중으로 봤을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민연금연구원이 발간한 중기재정전망보고서(2017~2021)는 2021년까지 국민연금 기금운용 적립 규모를 789조5777억원으로 추계하고 있다. 이에 대비해 보면, 2021년까지의 국민연금기금운용 총 규모 대비 사회책임투자 비중은 2.41% 정도에 그친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사회책임투자 비중이 1.14%이니, 이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5년 후인 2021년까지 겨우 1.27% 증가한다.
 
필자의 어설픈 계산이지만, 이 전망도 사실 낙관적일 수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기조는 주식과 대체투자를 늘리되, 국내 주식을 줄이고 해외주식 비중을 늘린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 ‘국민연금 중기 자산배분 및 2018년도 기금운용계획안 개요’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은 18.7%였다. 2016년에 심의?의결했던 2017년도 기금운용계획안에서는 19.2%였다.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국민연금은 2022년 말까지 국내 주식 비중은 20% 내외, 해외 주식 비중은 25% 내외로 설정하고 있다. ‘내외’라고 표현했을 뿐 국내 주식 비중은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그만큼 국내 주식 위탁운용 규모도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론에서는 사회책임투자 규모가 대폭 늘어날 거라는 식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필자는 로드맵(안)이 제시한 사회책임투자 확대 20%, 25%, 30%는 지금이라고 재고(再考)되어야 하고, 또 제고(提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비중 수치 설정에 대한 이론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자의적이라는 말이다. 향후 5년까지 전체 기금운용 대비 사회책투자 비중이 1%에서 2%대로 증가가 사회책임투자 활성화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족지혈(鳥足之血), 한강투석(漢江投石)이다. 바닥까지 추락한 국민연금의 신뢰를 끌어 올려야 할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의 대폭 확대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규모치고 이 수치는 너무 부끄럽다. 세계를 봐도, 가까운 일본만 봐도 새 발의 피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실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필자는 한 방울의 물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만, 이는 임계점에 다다랐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펌프로 물을 콸콸 끌어 올려야 할 시기다. 사회책임투자 규모를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수준으로 높여야 할 때다. 그래야만 사회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한 시장 감시도 제대로 작동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수준도 효과적으로 제고할 수 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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