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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우

(피플)"과로사는 사회문제…유가족이 먼저 목소리 내야"

과로사예방센터 이달 8일 출범…민변의 정병욱 변호사가 초대 소장

2017-11-2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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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과로사로 가족을 잃은 분들이 뭉쳐 목소리를 내는 게 목표다. 과로사 예방을 위해 유가족이 연대해야 한다. 유가족의 목소리가 모여 여론을 만들고,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과로사 방지법을 만들 수 있다."
 
이달 8일 출범한 과로사예방센터의 정병욱 소장(37) 주장이다. 법무법인 송경의 변호사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도 활동 중인 그는 최근 '잡'이 하나 더 늘었다. 변호사로 재판을 준비하면서도 과로사예방센터의 실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산업재해와 직업환경의학의 내로라하는 전문가인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윤근 소장과 임상혁 직업환경의학과 과장이 정 소장을 받쳐주고 있다.
 
매년 300여명이 과로사로 목숨을 잃는다. 산재로 인정되지 않은 과로사까지 포함하면 사망자 수는 대폭 늘어난다. 과로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많다는 게 과로사예방센터의 설명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장시간 노동은 시급한 사회문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과로사에 대한 개념조차 불명확하다. 예방을 위한 법과 제도 또한 부족하다고 센터는 말한다. 때문에 첫 걸음으로 유가족이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센터 발족의 배경이다. <뉴스토마토>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송경 사무실에서 정 소장을 만났다.
 
센터 소장을 맡게 된 계기는.
2008년부터 민변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노동법 법률지원을 했는데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전 소장님이 활동을 제안했다. 일본은 3년 전에 과로사방지법이 생겼는데, 우리나라도 장시간 노동이 심해 과로사 예방활동을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일본 전문가들을 초청해 세미나도 수차례 열었다. 노무법인 참터 유성규 변호사,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등 노동계 전문가들이 센터에 참여하고 있다. 이달 발족했는데 유가족들의 상담이 들어오고 있다. 센터는 과로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에 대한 법률지원, 과로사 예방활동을 한다. 당장은 과로사가 산업재해로 인정돼 유족급여 또는 피해보상금을 받도록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일본과 같은 과로사방지법을 제정하는 게 목표다.
 
지난 8일 과로사예방센터가 개소식을 진행했다. 사진/과로사예방센터
 
유가족들의 참여는. 
최근 30여년 전 남편을 잃은 유가족의 문의전화를 받았다. 전두환정권 때 남편이 과로사를 했는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원했다. 당시는 산재 신청을 하기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문의를 해오셨다. 과로사 유가족은 공통점이 있다. 가정이나 일터에서나 하나 같이 성실하게 일했던 분들이다. 일만 했는데, 급작스럽게 숨지거나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한 상실감이 무척 크다. 
 
센터 활동 범위와 방향은. 
법률 상담과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함께 한다. 산재로 인정될 수 있는지 상담하고, 관련 사건에 능통한 변호사와 노무사를 연결시키는 일을 한다. 피해 가족을 지원하는 게 최대 목표다. 과로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과로사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삼성 직업병,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때도 유가족이 직접 모임을 결성해 목소리를 냈다. 과로사가 유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연대하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최근 여러 건의 안타까운 과로사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넷마블과 CJ E&M에서 노동자가 과로사로 숨진 사건이 알려졌다. 과로사 예방 여론이 조금이나마 형성됐다. 하지만 과로사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은 여전히 없는 상황이다. 뇌심혈관계 질환은 6주 동안 주 60시간 이상 근무해야 산재로 인정된다.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경우는 기준이 더욱 모호하다. 과로와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황은 개인마다 다르다. 업무 양이 얼마나 부담이었는지,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였는지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다.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명백한 과로지만, 60시간 미만의 경우는 당사자를 중심에 두고 따져야 한다. 합리적인 과로사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정책적 한계는. 
과로의 개념조차 아직 정립이 안 돼 있다. 우선 업무의 개념이 모호하다. 회사에 출근하는 시간부터 퇴근까지만 업무시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회식을 하거나, 퇴근 후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보내는 것도 업무시간이다. 근무지와 관계없이 회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봐야 한다. 사내 따돌림을 당하거나, 업무가 갑자기 몰리는 것도 과로사의 요인이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 중 적어도 30% 이상은 업무 스트레스와 관계가 있다. 과로사의 원인은 다양한데, 합리적 기준이 없어 산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일본은 과로사방지법이 있다.  
우리나라는 한 주간 최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법에 명시돼 있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아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과로가 무엇인지, 과로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와 사용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법에 없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과로를 줄이기 위해선 정부가 관심을 갖고 정책적 접근을 해야 한다. 노동시간과 과로는 별개로 가야 한다. 노동시간만 줄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업무량, 스트레스, 갑질 등도 과로의 영역에 포함돼야 한다. 과로사방지법이든 노동법이든 과로와 관련한 법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일본은 2014년 과로사방지법이 제정됐다. 정부, 지자체, 사용자, 국민 등에게 과로사 예방을 위한 의무를 법률로 정했다. 같은 해 과로사방지센터가 발족, 연구개발과 상담 활동을 하고 있다. 과로사방지학회까지 결성됐다. 1991년 결성된 '과로사를 생각하는 유가족 모임' 활동의 성과다. 
 
정병욱 과로사예방센터 소장이 과로사방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국내도 유사한 법이 발의돼 있다
올해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로사 등 예방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과로사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 노동자와 가족을 보호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과로사를 유발한 사업주를 처벌하는 내용이다. 법안은 발의돼 있지만, 국회 통과까지는 요원한 상황이다. 법안을 제정하려면 여론이 형성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먼저 유가족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법 제정과 별개로 회사 문화를 개선할 필요도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너무 성실하다. 상명하복식의 군대 문화가 조직 전반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상사의 지시에 반발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불이익을 받는다. 이런 조직문화를 바꾸려면 임원과 상사의 사고가 열려 있어야 한다. 직원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일본은 과로사방지법 제정 이후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과로사가 발생하고 있어, 결국에는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센터의 목표가 있다면. 
가족이 과로로 숨지면 과로사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지병으로 숨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로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을 때 센터의 전문가들이 도움을 드리고 싶다. 법률적으로 어려운 점을 지원하고, 회사를 상대로 싸우고, 정부를 상대로 산재 신청을 돕는다. 유가족들이 함께 아픔을 서로 치유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 과로사를 예방하기 활동은 이미 시작됐다. 23개 노동·시민단체가 '과로사 아웃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법·제도 개선 투쟁은 공대위에서 맡고 있다. 센터는 유가족의 연대에 집중하고 있다. 전국의 민주노총법률원이 과로사 상담, 법률지원을 할 수 있는 체계도 만들 계획이다. 과로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게 유가족들이 센터의 문을 두드려주길 바란다. 
 
지난 8일 열린 과로사예방센터 개소식에서 한·일 양국의 과로사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 사진/과로사예방센터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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