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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은

(피플)김선택 회장 "복지정책 성공과 실패 가르는 기준은 납세 공정성"

"시민들 위한 세금정보 제공으로 시작, 국가편의적 세제정책 프레임 전환 노력중"

2017-11-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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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납세자연맹은 2001년 창립 이후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납세자운동을 전개해왔다. 자동차세 부과 방식 개편, 학교용지 부담금 반환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이뤄냈다. 납세자 개개인의 권리 향상에도 힘써왔다. 직장인들이 연말정산에서 과도하게 토해낸 세금은 없는지, 또 더 받을 수 있는 공제혜택을 몰라서 못 받는 일이 없도록 서비스를 늘려왔다.
 
때에 따라, 사안에 따라 일각에서는 정치적 의도를 묻기도 하고, '세금 내기 싫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납세자'에게 어떤 게 최선인지 따지는 것이 단체의 기본정신이라고 말한다. 창립부터 지금까지 약 20년간 연맹을 이끌고 있는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을 만나 '우리나라의 세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1년 연맹 창립 이후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그동안의 성과와 납세자운동 초기, 그리고 현재 납세자운동의 키워드를 소개한다면.
 
첫번째 성과로는 연식에 상관없이 배기량에 따라서 내던 자동차세 부과 방식을 개편한 것이다. 두번째 성과는 2008년 학교용지 부담금 특별법 제정을 통해 학교용지 부담금을 환급받았던 일이다. 
 
아파트를 살 때 해당 지역에 짓는 학교 용지 확보를 위해 아파트 분양가격의 0.7%를 부담금으로 부과했는데 위헌소송을 해서 위헌결정을 받았다. 원래는 위헌소송을 제기한 사람들만 환급을 받을 수 있었는데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런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 본회의를 2번이나 거친 끝에 26만명이 1인당 200만원 정도의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었다.
 
창립 초기에는 납세자운동이라는 것이 생소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주로 세금을 과다 납부한 경우 환급을 도와주는 업무나 연말정산에서 놓친 부분을 찾아주는 세법 정보들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뒀다.
 
작년부터는 국가적인 프레임에서 짜여있는 우리나라의 세금제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세금을 올리려고 할 때 '외국과 비교해 소득세 비중이 낮다', '보유세 비중이 낮다'하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 관료, 권력자들이 '복지를 하는데 세금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증세 프레임을 설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납세자들은 없다.
 
-최근 '한국의 납세자들이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이유 9가지'를 발표했다. 납세 저항이 큰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먼저 일부에서 우리가 세금을 내지 말자거나 조금만 내자는 것으로 오해하는 데 전혀 아니다. 잘못된 세금이나, 불합리한 행정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일단 납세저항을 줄이려면 세금이 낭비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 특수활동비 관련 뉴스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나. 우리가 낸 세금이 누군가의 쌈짓돈이 된다는데 내고 싶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더 중요한 것은 세금의 공정성이다. 나와 비슷한 소득을 버는 사람이 비슷한 세금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안 내고, 농사짓는다고 비과세하고, 노점상 같은 영세사업자들은 이리저리 빼돌리면서 일상에서 납세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다.
 
절차적인 문제도 중요한데 세금을 올리는데 있어서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부족하다. 지난 정부 때 연말정산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담뱃세를 올릴 때 공청회 한번 없이 진행됐다. 그저 두드리면 세금이 나오는 기계로 생각하는 것이다.
 
스웨덴 같은 경우 세금부담이 높지만 50년에 걸쳐 세금을 올렸다. 그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신뢰를 쌓고 납세자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세금 도덕성이 높아졌다. 우리나라는 세금을 안 내면 명단을 공개하고, 가산세를 매기는 상당히 강제적인 방식의 행정이 이뤄지고 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납세자연맹 사무실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납세자연맹이 생각하는 '적당하고 올바른' 세금의 기준은 무엇인가.
 
스웨덴의 경우 납세자가 세금을 내면서 사회에 기여하려고 하는 신념, 세금도덕성을 올리는 것을 납세행정의 목표로 한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잘 내는 게 행정비용 측면에서도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민들의 국세청 공무원들에 대한 신뢰도가 83%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13% 정도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의 차이고, 이는 세금에 대한 저항감으로 이어진다. 검찰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있다면 모든 범죄자들이 자기도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신뢰 수준이 낮으니까 처벌수위만 계속 높아지는 현실이다.
 
-개선 방법이 있다면.
 
문재인정부에서 국세청에 국세행정개혁TF를 만들었다. 정치적인 세무조사가 불공정 그 자체다. 이명박정부 초기 청와대 국세청선진화 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었는데, 당시 기업인 출신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중에 유일하게 세무조사를 받아 본 사람'이라며 우스갯 소리를 한 적이 있다. 그만큼 국세청이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다행히 이번 정부에서는 국세청장이 정치적인 세무조사를 끊어내겠다고 했다. 다만 이것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국세청 감독위원회를 둬서 민간위원들이 365일 국세청을 감시한다. 예산도 감시하고, 국세청장도 추천한다. 또 정치인이나 유력인사가 표적조사를 청탁하면 그 자체를 신고하도록 돼있고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다. 또, 우리나라는 인사에서 조사추징실적을 가점으로 인정하는데 민간 보험회사 같은 곳에서 하는 방식을 공무원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실적을 내기 위해 납세자들을 괴롭히게 된다. 미국은 조사추징실적을 인사고과에 반영하지 못 하게 돼있다.
 
넓게는 인간관이 바뀌어야 한다. 국세청도, 세법을 입법하는 국회도 사람들이 탈세를 해서 얻는 이득이 적발됐을 때의 손실보다 많으면 탈세를 할 것으로 생각하고 탈세의 위험비용을 계속 높인다. 가산세와 처벌수위를 올리고, 고액체납자를 공개하고, 포상금 제도를 만드는 배경이다.
 
하지만 최근 사회심리학 연구결과들을 보면 인간이 이성적이고 계산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어느 동네에 10명의 구멍가게 주인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중 9명이 '세금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성실하게 납세하면 남은 1명이 탈세를 할 수 있을까. 탈세를 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비용이 생겨나기 때문에 탈세를 할 가능성이 낮다. 세금으로 연결된 국가와 국민 간 관계에서 사회적인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복지정책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보수,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재정확보를 위한 증세를 언급한다.
 
많은 세금을 내고도 복지에 성공한 나라가 있고, 실패한 나라가 있다. 스웨덴은 성공했고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실패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른 기준은 공무원들의 수준, 사회 투명성의 차이였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저 역시 우리사회에 복지적인 기초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더 확대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복지의 기본이 되는 재정, 재정의 기본이 되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황이다. 호화로운 집만 짓다가는 붕괴될 수 있다.
 
-스웨덴의 납세행정에 대한 연구가 특히 깊은 것으로 보인다.
 
부패방지와 정부의 투명성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곳이 스웨덴이다. 제가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세계납세자연맹 조직을 통해서 스웨덴 국세청 전략팀장을 만날 수 있었고, 최근 협력을 통해 스웨덴 현지에 1년 동안 연구소를 설립해 연구할 수 있는 비자를 받게 됐다. 스웨덴의 비자 정책이 상당히 엄격하기 때문에 대사관에서도 이례적이라고 들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게 공무원들이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 연맹 직원이 향후 1년간 현지에서 연구하면서 생생한 사례를 발굴하고 전달할 계획이다. 우리가 얼마나 엉터리로 일하고 있는지 아주 충격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납세자연맹의 향후 계획은.
 
우리도 스웨덴처럼 흔쾌히 세금을 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주요 선진국들의 좋은 행정을 우리나라에 적극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또 우리 연맹은 9명의 상근자와 6억원 정도의 1년 예산으로 운영된다. 한 달에 적게는 1만원부터 그 이상을 내는 6000여명의 후원자가 우리가 정치중립적으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우리나라의 NGO(비정부기구) 사회를 보면 큰 단체들도 상근자 중심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비상근으로 자원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외국에서는 NGO에 근무한다고 하면 적당한 봉급을 받고,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 부분에서도 우리 연맹이 롤모델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활동해 나갈 것이다.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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