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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기부문화가 필요한 이유

2017-1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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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흩어지는 늦가을의 정취 속에 느닷없이 한파가 찾아왔다.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영하의 날씨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 전후로 울려 퍼지는 구세군의 종소리처럼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자선의 손길이 간절하다.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면서 경제적 불평등도 심화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하면 2015년 기준 노인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2.8%)의 4배에 육박한다. 어디 노인빈곤율만 그러한가. 청년·아동빈곤율은 어떠한가. 신자유주의 물결은 많은 사람을 가난의 문턱으로 밀어 넣고 있지만 정치권은 이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
 
2010년 선거에서 무상복지 의제가 처음 등장했다. 2년 후인 2012년 대선은 ‘복지선거’나 다름없었다. 좌파의 이념가치로 여겨졌던 평등과 복지를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 가리지 않고 공약으로 내걸고 우리 사회 내 복지담론을 불꽃 튀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도는 여전히 답보상태이고 복지를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보편적 복지를, 또 다른 이들은 선별적 복지를 주장한다.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나태하고 타인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무조건 그들에게 퍼 주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타당할까.
 
지난주 프랑스 NGO 단체인 가톨릭 구조대(Le Secours catholique)가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더 불행하고, 편견의 희생물”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빈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발했다. 프랑스는 한국에 비해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다. 이를 놓고 프랑스 내 일부 사람들은 빈자들이 제도를 이용해 각종 수당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고, 부정행위를 일삼으며, 일자리를 찾지 않고 있다고 비난한다. 실상은 어떠한가. 2016년 이 단체가 받은 가난한 사람들은 150만 명이며 이 중 70만 명이 어린이다. 베르나르 티보(Bernard Thibeau) 가톨릭 구조대 사무총장은 “오늘날 우리 수용소의 대부분은 어린이들이다. 이는 불안정한 가정이 점점 늘고 있는 증거”라고 말한다.
 
프랑스 통계청인 인세(INSEE: Institut national de la statistique et des etudes economiques)에 따르면 프랑스에는 현재 900만 명이 가난의 문턱을 넘나든다. 수입이 없는 가구가 늘고 있고, 실제 전체 인구의 6분의 1이 어려운 실정에 놓여있다. 이 중 53%는 외국인이라 일할 권리도, 생활보호 혜택을 받을 수도 없는 불안정한 상태다. 프랑스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생활보호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데이터다. 티보 사무총장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지난 20년 동안 악화되었고 사회통합은 약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이 시스템을 악용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들 중 40%는 자신의 권리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편견이나 떠도는 소문은 그들에게 더 없는 상처가 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지하거나 창피해서, 스스로를 자책해서 자신의 권리를 받지 못하거나 포기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20년 동안 영업보조원, 행정회계보조원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해 온 46세의 발레리 씨는 9개월 전부터 실업 상태다. 그녀는 “사람들은 내가 직장을 일부러 그만둔 것처럼 묻는다”며 “날 게으름뱅이 취급하는데 이러한 편견에 질린다. 우리 중 대부분은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는 충분하지 않다“고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발레리 씨는 매월 겨우 1000유로(한화 129만원)로 살고 있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게으른 것도,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프랑스처럼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실태를 조사한 통계자료는 찾지 못했지만,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나태하고 이타심이 강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다보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함께 나누는 것이다.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장발장을 통해 가난한 사람을 궁지로 모는 프랑스의 사회상과 인간군상을 신랄하게 고발했다. 가난한 사람을 유독 옹호했던 위고는 휴머니즘을 최고의 신조로 삼고 살았다. 그는 최후까지도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하며 그들을 위해 5만 프랑을 남겼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저서 ‘빈곤에 대하여’에서 자비 행위로서의 자선을 옹호하고 있다. 그는 “은밀하고 일시적인 개인자선은 공공자선보다 수혜자에게 덜 모욕적이고 경멸적이다. 사회는 공공자선보다 개인자선으로 더 잘 돌아간다”라고 주장했다. 토크빌 시대와 우리 시대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100% 받아들일 수 없다 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법적자선 만으로 가난은 결코 구제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나눌 수 있는 기부문화가 하루빨리 한국 사회에 정착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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