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김나볏

freenb@etomato.com

뉴스토마토 김나볏입니다.
(이정모의세상읽기)코앞에 닥친 특이점

2017-10-20 06:00

조회수 : 4,472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끝도 없는 우주’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우주에는 끝이 있다. 물론 아무도 그 끝을 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있다고 단언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야기는 블랙홀에서 시작한다.
 
저명한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첫 번째 연구 주제가 바로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중력이 엄청나게 커서 주변의 모든 물질, 심지어 빛마저 빨아들인다. 호킹의 동료 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는 블랙홀 한 가운데에 특이점(特異點, singularity)이 있다고 증명했다. 특이점이란 더 이상 어떤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점을 말한다. 예를 들어 중력 특이점이란 중력이 너무 크다보니 시공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사라지는 점을 말한다. 특이점에서는 더 이상 어떤 물리법칙도 성립하지 않는다.
 
호킹이 보기에 우주와 블랙홀은 닮았다. 그렇다면 블랙홀 한가운데에 특이점이 있는 것처럼 우주 역시 특이점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는 법. 우주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시점이 있었다면 우주라는 공간과 시간에는 마찬가지로 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펜로즈와 호킹이 우주가 특이점에서 시작한다는 ‘특이점 정리’를 발표한 이후 특이점은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감각으로 볼 수 있고 지능으로 이해할 수 없던 지평선 너머를 볼 수 있고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을 특이점이라고 부른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비생물학적 지능이 인간의 생물학적 지능을 능가하는 시점을 특이점이라고 불렀다. 단순히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것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인공지능 역시 인간의 소유일 테니 인공지능과 인간의 지능의 합이 우주를 포화시킬 것이고 결국 우리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우주의 운행이 단순한 기계적인 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한다는 뜻이다.
 
2006년 커즈와일은 그 특이점이 2045년에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생각을 터무니없다고 여겼다. “불과 40년 후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커즈와일은 오히려 특이점을 너무나 먼 일로 잘못 예측한 것처럼 보인다.
 
지난주는 21세기 들어 과학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한 주였다. 화요일 새벽에는 중성자별이 병합되는 과정을 중력파로 감지한 후 금과 백금처럼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생성되는 메커니즘을 알아냈다는 일곱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목요일이었던 어제 새벽에는 우리가 알던 알파고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알파고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알파고는 하나가 아니다. 2015년 10월 유럽 바둑챔피언 판 후이 2단을 꺾은 알파고 Fan,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을 꺾은 알파고 Lee, 2017년 5월 커제 9단을 꺽은 알파고 Master가 있었다. 알파고의 버전은 달라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인간의 기보를 바탕으로 바둑을 익히고 훈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제 발표된 알파고 Zero는 인간의 기보 없이 단순히 바둑의 규칙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학습했다. 이전의 알파고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알파고 Zero는 그야말로 비생물학적인 지능이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태어났고,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았다. 알파고 Zero는 인간의 바둑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는 가장 강력했다. 탄생한 지 불과 72시간 만에 세계 최고가 되었다. 바둑에 입문한 지 단 3일 만에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Lee를 100:0으로 꺾었으며, 커제를 꺽은 알파고 Master에게는 89:11로 이겼다. 생물학적인 지능을 박살낸 것이다.
 
특이점 이후에는 문명이 소유한 지능은 대부분 비생물학적인 형태일 것이다. 인간의 지능은 그야말로 문화재 수준에 머물 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특이점 이후에는 인간은 항상 기계와 연결되어 있다. 인간과 기계는 다른 존재가 아니다. 기계가 인간이고 인간이 기계인 것이다. 인류의 진화는 신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신처럼 되어 갈 것이다.
 
특이점은 2045년이 아니라 우리 코앞에 닥쳐있다. 인공지능은 그 어떤 미래학자들의 예측보다 가파르게 발전하고 있다. 특이점이 가까워졌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기쁜 일이다. 문제는 특이점으로 가는 여정에 우리나라가 기여하는 부분이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과학자들에게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알파고의 성장에 어느 나라의 정부도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 김나볏

뉴스토마토 김나볏입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