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박용준

https://www.facebook.com/yjuns

같이사는 사회를 위해 한 발 더 뛰겠습니다.
(청년상인 In 전통시장)①재기발랄 청년상인들, 대림상가에 젊음을 불어넣다

을지로·명동 인근 지역 인구까지 유입…노후한 상가에 새 활력

2017-10-18 06:00

조회수 : 5,430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전통시장이 늙고 있다. 2015년 기준 전통시장 상인 평균 연령은 56세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이대로는 주 소비층인 20~40대를 공략하기 버거운 실정이다. 청년들은 놀고 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고 열정을 갖춰도 취·창업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면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 둘이 만난 것이 전통시장 청년상인 육성사업이다. 전북 전주의 남부시장에 청년몰이 성공을 거둔 이후 중앙정부·지자체 가릴 것 없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서울시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창업자가 성공하지 않듯이 전통시장 청년상인이 모두 성공하진 않는다. 일부는 기존 상인들과 마찰을 빚기도 하며, 청년상인이 사업성을 갖추지 못해 폐업하고 다시 빈 점포가 된 곳도 적지 않다. <뉴스토마토>는 최근 서울에 청년상인이 문 연 두 지역을 찾아 전문가 등과 함께 전통시장 청년상인의 성공조건을 짚어봤다. 3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주)
 
1967년 세운상가, 현대상가를 시작으로 1972년까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신성상가, 진양상가가 건립되면서 세운상가군은 전기·전자부품산업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도시 개발축이 한강 이남으로 넘어가면서 세운상가군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됐고 도심의 흉물로 변해갔다. 1979년에 이미 철거계획이 수립됐지만 30년 넘게 재개발이 지연됐다.
 
박원순 서울시장 들어 세운상가군에 재개발 대신 ‘다시세운프로젝트’라는 이름에 도시재생이 진행됐고, 지난달 새로운 연결 보행로를 갖춰 1단계 사업이 개통했다. 다시세운프로젝트에는 보행길 조성, 도심제조산업 활성화 등이 큰 축을 이루지만 청년상인도 결코 작지 않은 역할을 맡고 있다. 청년상인들은 경양식, 음료, 제과, 제빵, DIY키트 등 저마다 재미난 요소들을 지닌 가게를 통해 ‘어제’의 대림상가가 아닌 ‘오늘’의 대림상가로 시계를 돌려놓고 있다.
 
인근지역까지 입소문, 회사원들 몰려 '북적
 
지난 13일 세운상가에서 3층에 있는 보행데크를 따라 대림상가로 넘어오니 조명가게와 각종 전자부품가게 등으로 어수선한 1층과는 또다른 풍경이 맞이했다. 상가 3층 보행로에는 젊은 제작자들로 구성된 세운 메이커스 큐브가 양쪽에 자리했고, 기존 점포 사이 빈 점포에는 청년상인 점포 4곳(1곳은 7층)이 문을 열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니 경양식을 파는 그린다방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젊은 직장인들이 붐볐다. 물어보니 을지로 인근 기업체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맞아 대림상가까지 넘어왔다. 지리적으로 가까워도 이전에는 세운상가군으로 오지 않고 을지로·명동에서 해결하던 직장이들이 동선을 대림상가까지 확장한 셈이다.
 
식사시간이 지나니 식후 디저트를 해결할 수 있는 런던케이크, 호랑이커피, 돌체브라노 등 청년상인 점포에는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줄을 섰다. 생긴지 한 달도 채 안 됐지만, SNS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재밌고 예쁜 곳을 찾아 넘어온 사람들이다.
 
늘어선 줄에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노신사도 있었고, 작업복을 입고 있는 기존 대림상가 상인도 있었다. 또 저마다 커다란 DSLR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가게의 인테리어를 찍는 블로거나 SNS 인플루언서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젊은 층의 유입과 유동인구 증가가 세운상가군의 활성화로 100% 이어진다고 예단할 수는 없지만, 공간이 살아나고 지역을 숨쉬게 만드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김동민 대림상가 상인회장은 “대림상가는 한 바퀴만 돌면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던 만큼 한때 위상을 자랑했던 곳”이라며 “기존 상인들의 노하우와 청년 상인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이 곳을 다시 활성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청년상인들 “옛스러운 멋 그대로 살리겠다”
 
그린다방을 운영하는 김시우 대표(29)는 ‘주다야싸(주간 다방, 야간 살롱)’을 지향한다. 아직 개업 한 달 밖에 안 돼 메뉴도, 인테리어도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1970~1980년대 대림상가의 명물이었던 ‘그린다방’을 계승하고자 명칭도 손대지 않고 컨셉도 상당 부분 가져왔다. 김 대표는 4년 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창업을 결심하던 중 청년상인 사업을 접했고, 대림상가를 시장조사하면서 홍콩과도 비슷한 대림상가만의 낡은 분위기에 푹 빠졌다.
 
그린다방이 기존 상인이나 상가 이용자들에게 이질감을 주지 않도록 메뉴 구성이나 가격 책정에도 이들의 욕구를 반영했다. 근처 직장인들은 물론 기존 상인들도 많이 찾고 있으며, 향후 배달 서비스를 통해 바쁜 상인들이 직접 오지 않아도 가게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김 대표는 “젊은 층도 많이 오지만, 전체의 30% 정도는 근처 상인들이 찾고 있다”며 “이 곳 특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른 청년상인 점포들이 3층에 자리해 유동인구가 비교적 많지만, 권용운 '숨끼(숨은 끼 찾기)' 대표(32)만은 대림상가 767호에 10평 남짓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하지만 식음료에 집중된 다른 청년상인과 달리 DIY키트를 만들어 판매하는 숨끼는 가장 대림상가와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다.
 
당초 유명 대학교를 나와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던 권 대표는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자신의 끼를 찾았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라 문화센터까지 찾아갈 정도로 수공예를 좋아하던 권 대표는 우연히 자신이 만든 묵주를 판매하면서 취미생활의 남다른 가능성을 봤다.
 
지난달에는 온라인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핀란드 전통 모빌인 힘메리(Himmeli) 제작 키트를 올려 꽤 인기를 끌었다. 힘메리 제작 키트 다음에는 종이 공예인 ‘페이퍼 커팅’ 키트를 소개하는 등 매달 하나씩 새 아이템을 선보이고 취미생활 확산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권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각종 부품이나 재료를 사러 이 동네를 자주 와서 이 곳에 창업하는데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며 “근처에서 각종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큼 이 곳에서 오랫동안 숨끼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시우 그린다방 대표(가운데)가 그린다방 앞에서 동료들과 있는 모습. 사진/그린다방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 박용준

같이사는 사회를 위해 한 발 더 뛰겠습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