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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김영란법)②시행 부작용 구체화·처벌 잣대 모호…신고남발도 우려

검찰 접수11건 중 기소 7건뿐…업계 피해 주장에 "법 영향 없다" 반론도

2017-09-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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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국민들이 문제로 지적한 ‘기준의 모호성’과 관련해서는 청탁금지법 관련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의 해석도 아직 충분히 쌓이지 못했다. 예를 들어 권익위는 ‘직접적 직무관련성’ 개념에 대해 “직무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자”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는 ‘공무원행동강령’상 직무관련자’에 준한 것으로 추론되지만 모호성으로 여러 논란을 부르고 있다. 특히 교원의 학생과의 관계를 ‘직접적’ 직무관련성의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카네이션이나 캔커피의 제공조차도 형식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다 보니 직접적이라는 개념이 모호한데도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직무 관련성이 곧바로 인정되기 때문에 금품수수 제한금액 규정은 애초부터 필요 없는 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과잉입법 논란은 이미 제정되기 전부터 제기됐다. 지난 2015년 3월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전 이상민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뻔히 위헌성이 있고 법치주의에 반하고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론 때문에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법안명만 통과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겠느냐"며 청탁금지법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미흡했음을 시인했다. 이같이 법 시행 이전부터 철저한 보완의 필요성이 지적됐지만 시행 이후에도 개정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입법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법 시행 후 구체적인 지표도 청탁금지법의 현실을 말해 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설 식품 선물세트 판매액이 전년 대비 약 14.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직격탄을 맞은 대표 업계인 화훼업계와 한우업계는 법 시행 1주년을 계기로 어느 때보다 법 개정 요구의 목소리가 크다. 업종별 불만도가 가장 높은 화훼업계의 경우 권영규 aT 화훼사업센터 부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탁금지법 효과에는 동의하지만 화훼시장, 특히 유통과 판매업자 등의 타격이 크다”며 “선물용 비중이 높은 난초는 거래금액이 전년 대비 25% 내외로 감소했고, 화환협회 통계에 따르면, 소속 회원 꽃집 1200여곳이 작년 9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부터 올해 8월까지 거래금액이 27%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탁금지법상 허용되는 선물가액과 음식물 제공 가액은 10만원으로 올리고, 정부 차원에서 법상 허용되는 가액 안에서는 난초나 화환을 주고 받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홍보와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황엽 전국한우협회 전무도 “법 시행 이후 소 값이 25% 떨어지고 한우를 취급하는 음식점은 도시 위주로 40%이상 매출이 급감했다”며 “명절특수는 사라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황 전무는 또 “명절 때가 되면 소 값이 보통 15% 오르는데 올해는 소 값 상승률이 작년과 비교해서 다소 떨어졌다. 특히 올해는 소 두수가 작년보다 많이 줄었는데도 오르기는커녕 가격이 비슷하거나 떨어지는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탁금지법 적용시 국내산 농축수산물과 관련한 영역은 제외돼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에 두 번이나 약속했고, 국무총리나 해수부, 농림부 장관들도 인사청문회 때부터 청탁금지법으로 농어가에 어려움이 없도록 조치한다고 했지만 올해는 어려울 것 같고 내년 설쯤엔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화훼업계 등의 피해가 반드시 청탁금지법에 기인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길준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청탁금지법의 쟁점과 평가’에서 각 업계가 조사한 발표 내용을 소개한 뒤 그 피해는 오히려 해당 사업의 구조적 문제와 경기불황 등이 더 큰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의 모호성과 과잉입법 논란은 사법처리에도 그대로 영향을 줬다. 대검찰청 반부패부(검사장 김우현)가 최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 8월까지 전국 검찰에 접수된 사건은 총 111건이다. 2016년 접수된 사건 23건 가운데 기소된 사건은 없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와서는 총 88건이 접수된 가운데 정식으로 기소된 건 수는 5건에 달한다. 구공판 아닌 구약식은 2건이며 나머지 12건은 불기소 처분됐다. 결국 법 시행후 지금까지 구약식과 구공판으로 처리된 사건수는 총 7건인데 반해 불기소 된 건수는 25건에 달한다. 자체 통계만 보면 적은 건수이지만 법의 모호성 때문에 '묻지마'식 신고도 우려된다. 검찰 관계자는 "법 시행 초기로, 사법부 판례가 충분히 쌓이기 전 까지는 정제되지 않은 신고가 많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탁금지법으로 기소된 사건 7건 가운데 법원의 판단을 받은 사건은 1건 뿐이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형사2단독 이수웅 판사는 지난 16일 청탁금지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한국도로공사 고위 간부 A씨에 대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사업 편의를 대가로 도로포장 업체 대표로부터 200만원을 수수한 혐의다. 국민권익위 조사결과 법 시행 이후 국민권익위에 신고된 사건 수는 총 395건이며, 금품수수가 203건으로 가장많았고, 부정청탁(173건), 외부강의(19건) 순으로 그 뒤를 이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1년을 일주일 앞둔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 각 의원실에 배달된 추석 선물이 지난해보다 현저히 줄어들어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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