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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훈

양승태 대법원장 "진영논리로 재판 비난, 사법부 위기"

42년 법관 생활 마무리…"법관은 재판 독립 지킬 책임 있어"

2017-09-2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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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제15대 대법원장을 끝으로 42년 동안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진영논리로 재판 결과가 비난받는 것을 사법부의 위기라고 우려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법관독립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대법원장은 22일 오전 11시 대법원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우리의 사법체계는 사법부의 독립이 민주체제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지를 역대 헌정사를 통해 절실히 인식하고 만들어낸 역사와 경험의 산물"이라며 "오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이룩한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을 우리 편 아니면 상대편으로 일률적으로 줄 세워 재단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만연하고,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강변하면서 다른 쪽의 논리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진영논리의 병폐가 사회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며 "이러한 그릇된 풍조로 재판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기만 하면 극언을 마다치 않는 도를 넘은 비난이 다반사로 일고 있고, 폭력에 가까운 집단적인 공격조차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는 사법부가 당면한 큰 위기이자 재판의 독립이란 헌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또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법관독립의 원칙은 법관을 위한 제도가 아니고, 법관에게 특혜나 특권을 주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법관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서 법관에게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관이 이러한 헌법적 책무를 깊이 인식하고 법의 정신에 따른 슬기로운 균형감각과 의연한 기개로써 지혜와 희생정신을 발휘할 때 사법은 비로소 국민의 굳건한 신뢰 위에 서서 그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 대법원장은 "노력에 대한 국민의 따뜻한 격려가 들려오거나 가시적인 결실을 봤을 때 뿌듯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고, 예기치 않은 일로 법원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질 때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듯한 허탈감을 겪기도 했다"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6년 전 취임사에서 '법원의 개혁은 법관에 대한 존경과 신뢰 없이는 사법부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의식의 개혁과 성찰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신뢰 확보를 위한 노력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속해야 하고, 장차 법관의 의식 개혁이 그러한 노력과 보조를 같이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양 대법원장은 "한 그루 늙은 나무도/고목 소리 들으려면/속은 으레껏 썩고/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그 물론 굽은 등걸에/매 맞은 자국들도 남아 있어야"라고 조오현 시인의 작품 '고목 소리 들으려면'을 읊으면서 취임사를 맺었다. 양 대법원장은 "고목에는 이파리도 몇 개 없고 줄기도 볼품없지마는 모진 풍상을 견뎌온 흔적에서 숙연한 연륜의 향기가 풍겨온다"며 "저는 제가 그저 오래된 법관에 그치지 않고, 온 몸과 마음이 상처에 싸여있는 고목 같은 법관이 될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과 행복으로 여기겠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경남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75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법원행정처 차장, 특허법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을 역임한 후 2011년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에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 파동과 관련해 전국법관대표회의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법관회의는 법원행정처가 지난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 지시와 함께 이를 거부한 판사를 상대로 부당하게 인사 조처했다는 의혹에 대해 대법에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를 요구했지만, 양 대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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