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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우

(피플)한국노총위원장의 일갈 "회사 망하길 바라는 노조는 없다"

"정권교체 실감…노동시간 단축·비정규직 축소·노동기본권 확대 실현해야"

2017-09-2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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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비정규직, 통상임금 등 이미 결론이 난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지속하는 건 무의미하다. 비정규직을 줄이자는 것에는 경영계와 정부도 이견이 없지 않나. 산업 구조조정의 시기에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만들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18일 노사정 대타협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달 25일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신임 위원장이 취임한 뒤 김 위원장의 행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노동계 출신이 고용노동부와 노사정위의 수장을 맡으면서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던 노동계의 우려도 일정 부분 해소됐다.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예상도 나왔다. 지난 4일 문 신임 위원장은 한국노총을  찾아 김 위원장의 노사정위 복귀를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동계도, 경영계도, 정부도 할 일이 있지 않나. 당장 눈 앞에 있는 문제만 갖고 대화를 하려 한다"며 "노사정위는 의제와 구조를 바꾸고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틀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주도하기보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중심이 되서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9개월째를 맞은 김 위원장은 최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만났다.  
 
취임한 지 9개월이 지났다. 정권이 교체돼 변화를 체감할 것 같다. 
"박근혜정부가 밀어붙였던 성과연봉제, 쉬운 해고가 중단됐다. 새 정부는 양대 지침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정권 교체로 인한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최저임금이 16.4% 올라 역대 최대 인상폭을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도 지켜질 것으로 예상한다. 노동계 출신 노동부 장관이 취임한 것도 또 다른 변화다. 김영주 장관이 취임 이후 전국 주요 도시에 현장노동청을 설치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노동계와 소통하려는 모습으로 읽힌다. 기대가 크다."
 
노정 대화를 요구해왔다. 정부와의 소통은 어떤가. 
"이전 정부와 비교하면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노사갈등을 겪는 사업장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고용부와 한국노총이 참여하는 노정협의체가 꾸려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태스크포스(TF)도 지난 5월 발족했다. 하지만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안 돼 노동정책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무엇보다 과거 정부가 발표한 지침들을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 통상임금, 노동시간 등 현재 경영계와 노동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안들은 이전 정부 지침에서 비롯됐다. 정부가 풀 건 정부가 해결하고,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국회에 맡겨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다. 
"노동 문제는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노동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대립을 조율해야 한다. 노동계는 목소리가 작고, 경영계와 재계의 목소리는 크다. 현 정부의 내각 구성을 봐도 노동부, 노사정위를 제외하면 장관의 성향이 경영계에 가깝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축소, 노동기본권 확대를 실현해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기본 요건 중 하나가 노동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최근 '과로사 근절 및 장시간 노동 철폐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매년 과로사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는 노동자가 300여명에 달한다. 직종을 가리지 않고 과로사가 발생한다. 올해 15명의 집배원 노동자가 과로로 돌연사하거나 사고(자살 포함)로 숨졌다. 지난 1월에는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과로사로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7월에는 경부고속도로에서 버스노동자가 졸음운전을 하다 승객 2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이 정도면 과로사가 아닌 참사다. 장시간 노동은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노동계가 꾸준히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현된 게 없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법 개정안이 이번에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넘지 못했다. 
"정치권이 국민들께 또 한번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정치권이 법 개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노동자와 시민이 희생됐다. 몇 년째 논의만 할 생각인지 모르겠다. 정치권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노동시간 특례업종의 유예기간이 끝나고, 전 사업장에 적용됐을 것이다. 특례업종 축소는 물론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축소하는 개정안도 여야 합의가 안 됐다. 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지침을 폐기하는 게 맞다. 정부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해석하면서 빚어진 문제인 만큼 정부가 풀어야 한다. 한국노총은 환노위 위원들을 만나 법 개정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노동자가 연장수당 때문에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어 캠페인 활동에도 나설 계획이다." 
 
민간부문에서 일자리 창출이 더딘 것 같다. 
"일자리 창출은 단시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8월 취업자수가 줄었다고 해서 속단할 수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일자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중이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질 낮은 일자리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한국노총은 일자리 양은 물론 질을 높이기 위해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했다.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 또 관철시킬 것이다." 

대한상의와 경총을 찾아 일자리 문제를 논의했다. 
"경제단체도 양극화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해법은 노동계와 다른 것 같다. 일자리를 우선 늘리고 질은 나중에 높이자는 식이다. 하지만 한 번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어렵다. 일부 국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정규직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한다. 고용이 불안한 만큼 높은 임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용이 불안한데 임금도 낮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한국노총의 해법이 있다면.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방법밖에 없다. 기업이 상시지속업무조차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다 보니 정규직은 소수고, 비정규직만 늘어나고 있다. 상시지속업무는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하고, 육아휴직 등으로 일정기간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법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기간을 정하다 보니 비정규직이 무분별하게 늘어났다. 기간이 아닌 사유를 제한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대 노총이 노동기본권 확대를 하반기 과제로 내걸었다. 
"우리나라는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노동권의 보장을 막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87호와 98호가 비준되면 노동3권이 전보다 폭넓게 보장된다. 최소한의 절차만 거치면 누구나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다. 노동3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노동자가 노조를 설립할 수 있고, 해고자와 취업준비생도 노조를 만들 수 있다. 좋은 일자리도 결국은 노동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받을 때 가능하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사용자와 협상하고 싸우는 주체는 노조다." 
 
노조 설립에 대한 사용자의 거부감은 여전하다. 
"노조조직률이 10.2%(2015년)에 불과하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을 10명 중 1명만 누리는 셈이다. 노동기본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추세는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지 오래다. 1989년보다 노동자 수는 2배 이상 늘었는데 노조 조합원 수는 그대로다.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위주로 바뀐 이유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하기 녹록치 않다는 얘기다. 일부 사용자들은 노조가 만들어지면 회사가 망할 거라고 생각한다. 회사 망하길 바라는 노조는 없다. 회사가 망하면 일자리도, 노조도 없어진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처럼 애사심이 강한 노동자들이 없다. 노조가 설립되면 회사가 망한다고 하는 건 지나친 흑색선전이다. 회사가 잘 되야 노동자도 잘 되고, 노동자가 잘 살아야 나라가 잘 된다. 함께 살기 좋은 나라에서 잘 살자고 일하는 것 아닌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18일 <뉴스토마토>와 만나 노동현안을 이야기했다. 사진/뉴스토마토
한국노총이 지난달 23일 과로사 철폐를 위한 대책위를 발족했다. 사진/한국노총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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