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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제약, 제네릭잔치는 끝났다)②제약, 산업역군에서 천덕꾸러기로…계륵이 된 '복제약'

신약개발 외면하고 '땅짚고 헤엄치다' 약가인하 철퇴…도입약 의존 심화 부작용 속출

2017-09-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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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원석 기자]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타미플루'는 유명 독감치료제다. 국내서 600억원대 실적을 올렸다. 타미플루가 지난 8월 특허만료되자 국내 제약사가 허가받은 복제약 개수는 무려 130여개다.
 
임상시험은 신약 R&D 역량을 가늠하는 잣대로 평가받는다. 올 상반기 국내 임상시험은 342건으로 전년 동기(295건) 대비 16% 증가했다. 임상시험 상위권은 모두 글로벌 제약사가 차지했다. 길리어드가 12건, 로슈, MSD, 노바티스가 각 9건이다. 복제약 개발을 위한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은 올 상반기 122건이 승인됐다. 대부분 국내사가 차지했다.
 
이것이 국내 제약업계의 현주소다. 산업 구조는 하향 평준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제약사는 900여개로 추정된다. 20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제약사는 20여개에 불과하다. 상위 10개사가 시장 규모 15조원(IMS데이터)의 절반을 차지한다. 국내 제약사들이 내수와 복제약 위주로 성장한 결과다. 제약사들은 신약보다 복제약만 개발하다 제약산업이 흔들리는 위기를 자초했다.
 
과거 정부는 복제약 약가를 높게 쳐줬다. 복제약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신약 R&D에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오리지널약 특허만료 후 복제약 약가는 프랑스 50%, 네덜란드 60%, 오스트리아 52%인 반면 우리나라는 68%로 선진국들보다 훨씬 비싼 약값을 줬다. 2011년 우리나라 복제약 가격(가중평균가/1로 가정)은 스웨덴(0.395), 노르웨이(0.369), 스페인(0.550), 대만(0.955), 이탈리아(0.643), 일본(0.784), 미국(0.937) 등으로 경제수준을 감안해도 외국보다 높았다.
 
정부의 복제약 고가 정책은 오히려 제약사들이 신약개발을 외면하는 쪽으로 작동됐다. 복제약만으로도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은 내수 시장에서 복제약 영업에만 집중했다. 기술집약도가 높은 신약 개발보다 복제약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신약개발 도전에 나서는 제약사는 일부였다. 복제약 판매로 벌어들인 돈은 R&D에 투입되지 않고 불법 리베이트로 흘렀다. 오리지널약의 특허만료와 동시에 수십개 동일한 복제약이 쏟아지면서 처방을 유도하기 위한 뒷거래가 성행한 것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 위기로 상황이 급변했다. 건강보험 재정은 2010년 당기적자 1.3조원으로 재정 위험 상황에 처했다. 적자가 확대돼 파산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졌다. 정부는 제약산업에서 건강보험 재정 개선의 실마리를 찾았다. 불법 리베이트와 복제약의 높은 가격이 명분이 됐다.
 
정부는 2012년 제약산업 선진화를 위해 대대적인 개편에 나선다. 2012년 시행된 일괄 약가인하는 제약업계 가장 파장력이 큰 정책으로 꼽힌다. 복제약 시대 종말을 가속화시켰다는 평가다.
 
일괄 약가인하는 의약품 보험약가를 절반(53.55%) 수준으로 깎는 정책이다. 당시 보험 등재 의약품 1만3814개 중 47%인 6506개가 약가인하됐다. 약제비 절감액은 약 1조7000억원이다. 이는 제약산업 규모의 10%가 넘는 금액이다. 제약사별로 10% 이상 매출이 증발했다는 계산이다. 연평균 10%에 달하는 의약품 시장 성장률은 일괄 약가인하 시행에 따라 1% 미만으로 떨어졌다. 복제약을 팔아도 영업비 등 판관비를 제하고 수익이 남지 않는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복제약은 특허만료된 오리지널약과 동일한 가격(특허만료 전 가격의 53.55%)으로 책정됐다. 저렴한 복제약 처방 유도 요인이 사라진 셈이다. 오리지널약의 선호도가 더욱 높아지면서 또다른 문제를 낳았다. 단기 매출 확보를 위해 글로벌 신약 유치 경쟁이 가열되는 역효과를 나타냈다.
 
50여개 상장 제약사의 상품 매출(도입약) 비중은 2010년 20%대에서 2016년 30%대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10대 상위 제약사의 상품 매출 비중은 45%에 육박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대형약물을 도입하면 손쉽게 매출이 발생한다. 하지만 도입약물은 수익률이 좋지 못하다. 업계에 따르면 영업 위탁의 경우 매출액에서 대략 20% 정도를 원개발사로부터 판매수수료로 받는다. 판관비, 영업비를 제하고 남는 돈이 없다는 전언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신약 도입에만 매달리면 제약산업의 생태가 영업대행으로 체질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 결과적으로 글로벌 제약사가 국내 시장을 지배해 제약산업의 자립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약물 선택권을 높인다는 점에서 복제약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국내 제약업계가 신약개발을 등한시하고 복제약 개발에만 편중됐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제약산업은 과도기적 단계로 볼 수 있다"며 "점차 복제약에서 신약 중심으로 R&D 방향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1년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2012년 의약품 보험 약가를 절반으로 깎는 약가제도를 시행했다. 사진=뉴시스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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