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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독서)오감의 즐거움 ‘아날로그’, 포스트디지털 시대를 열다

LP·몰스킨 노트에 담긴 물성 자체의 즐거움…디지털 홍수서 새로운 시장 가치 ‘창조’

2017-08-31 14:28

조회수 : 3,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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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 세계적으로 매해 4월 셋째주 토요일엔 ‘레코드점의 날’ 행사가 열린다. 제이슨 므라즈, 데스 캡 포 큐티 등 유명 뮤지션들의 특별 한정판 음반이 행사에 참여하는 레코드점에서 판매된다. 몇 몇 레코드점은 메탈리카 사인회 등 빅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수집가들은 앨범을 구매하거나 이벤트를 보기 위해 밤새 줄을 서고 매장은 평소에 비해 50%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한다. 미국, 유럽에서는 이 같은 열풍에 LP를 파는 새로운 레코드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2. 이탈리아의 몰스킨 노트는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친숙한 노트’가 됐다. 사람들은 이 노트를 이용하면서 마치 피카소나 헤밍웨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자신의 가치나 관심사, 꿈을 투영한다. 둥글게 깎은 모서리, 고무 밴드, 미색 속지 등 평범한 디자인에도 몰스킨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나 트렌드세터들, 그리고 대중들의 손에 가장 많이 들리는 필수 아이템이 됐다. 

캐나다 출신의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관찰되는 아날로그 열풍에 주목한다. 단순히 유행에 민감한 몇 몇 도시에서 번성하는 듯 했던 이 트렌드는 점차 주류 소비문화로 확대되고 ‘급류’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디지털로의 이행이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가해진 일종의 ‘저항’이자 ‘반격’. 그가 최근 집필한 신간 ‘아날로그의 반격’에는 이 같은 오늘날의 변화 흐름이 실제 현장과 전문가들을 취재한 방식으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 

1984년 구소련의 한 군수회사가 만든 플라스틱 카메라 로모그래피는 오늘날에도 전 세계 40개 이상의 프랜차이즈 매장과 직영 매장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 실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컬러감이 소비자에게 기존 사진술과 다른 로모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등 최근 각광받고 있는 소셜미디어(SNS)들은 로모에 담긴 10여개의 사진 문법을 교과서처럼 흉내내며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스마트해지는 느낌’을 팔겠다는 철학으로 종이 잡지를 만든다. 온라인에서 정보의 과잉을 느끼던 독자들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넘기며 지식을 온전히 흡수하고 끝까지 완독함으로써 똑똑해졌다는 느낌의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이에 이코노미스트는 2006년 일주일에 100만부를 찍던 잡지를 2015년 160만부로 늘렸다. 

이 외에도 책은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이용한 수업이 도입됐지만 다시 종이책을 읽는 미국의 교육 현장이나 손님이 읽고 싶을 만한 책을 찾아 건네주는 ‘핸드셀링’ 문화가 퍼지고 있는 뉴욕의 오프라인 서점,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수를 확대하는 메이시스 백화점, 베스트 바이, 애플 등 리테일 업체들을 두루 훑는다. 

그렇다면 이처럼 ‘한물갔다’고 평가받는 아날로그적 상품과 서비스, 아이디어가 재차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그 답이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오감의 즐거움 속에 있다고 말한다. 

가령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는 단순히 아이튠즈에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이용자에게 더 큰 참여감과 만족감을 준다. 서가에서 앨범 커버를 꼼꼼히 살피며 턴테이블의 바늘을 정성스레 내려놓는 행위, LP 표면을 긁는 듯한 음이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직전 1초의 침묵, 이 모든 과정에서 손과 발, 눈, 귀가 동원된다. 물성 그 자체를 느끼는 물리적 터치감 속에서 이용자들은 즐거움을 느낀다. 

게다가 아날로그는 수익적인 부분에서도 무시못할 ‘힘’을 갖고 있다. 2007년 99만장 수준이었던 미국의 LP 판매량은 2015년 1200만 장 이상으로 늘었고 음반업계는 유튜브나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광고 수익보다 LP로 벌어들인 수익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2009년 1660여곳으로 최저점을 찍었던 미국 오프라인 서점은 2014년 2227개로 늘었다. 잡지업계에선 아우라가 없는 온라인 잡지 사이트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달 평균 20종의 종이 간행물이 발간되고 있으며 마니아 고객층을 사로잡고 있다. 단순히 과거 향수나 감성에 의존하는 일회성 마케팅이 아닌, ‘충성고객’을 바탕에 둔 시장적 가치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비즈니스 세계가 점점 더 디지털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아날로그 기술을 새롭고 참신하게 활용하는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마치 하나의 대안으로서 포스트디지털 경제가 출현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가 디지털 이전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극단적 주장을 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완전히 아날로그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매력적이지 않듯 완전히 디지털적으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임을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다”며 “결국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책의 결론이자 우리가 추구해야할 이상적인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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