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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토마토칼럼)명칭을 바꾸는 게 전부는 아니다

2017-08-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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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12개 노동관계법에서 사용되는 ‘근로’라는 표현을 ‘노동’으로 바꾸는 법 개정이 추진된다고 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취임식에서 근로자 대신 노동자란 표현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개정이 이뤄지면 각 조항의 표현뿐 아니라 법률안의 명칭도 근로기준법에서 노동기준법으로, 근로복지기본법에서 노동복지기본법으로 바뀌게 된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움직임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에게 근로자란 명칭은 족쇄였다. 근로의 ‘근’은 부지런할 근(勤)자다. 따라서 근로자에게 권리보단 부지런할 의무가 먼저다. 또 근로자는 희생적 존재다. 단어의 태생부터 그렇다. 구한말, 제국주의 일본으로부터 단독명사가 아닌 복합명사로 들어왔다. 주로 근로정신대, 근로보국대 등 수탈적 의미의 단어였다. 반면 노동은 능동적 행위다.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의 주체이기도 하다.
 
다만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게 명칭만 바꾸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제도적으로 근로자와 노동자는 다른 존재다. 사용자가 정한 장소에서, 사용자가 정한 시간 동안, 사용자가 정한 일을 해야 근로자다. 다른 표현으론 사용자 종속성이다. 반면 노동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경제적 종속성이다. 경제적 종속성은 사용자 종속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노무의 대가로 얻는 임금(혹은 수당)이 유일한 소득이라면 모두 노동자다. 그런데 노동법의 보호 대상은 근로자뿐이다. 노조법 등 일부 법률에서만 근로자의 범위를 보다 폭넓게 인정할 뿐이다.
 
근로라는 명칭만 노동으로 바뀐다면 변하는 건 없다. 노동자 구분이 ‘근로자인 노동자와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에서 ‘제도권 노동자와 비(非)제도권 노동자’로 바뀌는 게 전부다.
 
명칭을 바꾸는 데 더해 노동법이 더 많은 실질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게끔 법적 노동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사용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비전속 노동자를 제외하곤 점진적으로 법적 노동자의 기준을 사용자 종속성에서 경제적 종속성으로 변화시켜가야 한다.
 
제도권 노동자의 기준이 제조업 기반의 1960년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리나라에선 세계적으로도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고용형태 다양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보험설계사와 학습지교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사업체가 아닌 개인에 고용된 가사 노동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의 플랫폼 노동자, 전속계약 형태의 프리랜서는 대표적인 제도권 밖 노동자다.
 
제도권 노동자라고 해도 모든 제도로부터 보호받는 게 아니다. 기간제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업체 노동자, 노동시간 특례업종 및 예외업종 종사자, 수습 노동자 등 상당수가 제도권 노동자임에도 일부 법률 또는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법률적 사용자와 실질적 사용자가 다른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동법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기존 제도권 노동자들에 대한 특례 및 예외규정도 현실에 맞게 재정비가 필요하다.
 
노동에 대한 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노동자는 사용자 개인의 착취 대상이 아니다. 서로의 목적을 위해 지급하는 대가가 다를 뿐, 사람으로서 사용자와 노동자는 동등한 관계다. 사용자에 종속된 대상은 임금을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행위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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