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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차기태의 경제 편편)절제 잃으면 자유도 잃는다

2017-08-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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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인수위 역할을 맡았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6월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 연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건강보험과 민간의료보험을 연계해 실손보험료 인하를 유도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건강보험을 강화해 비급여로 남아있던 질병을 급여로 전환하면 보험금 지출이 줄어드니, 그만큼 보험료를 내리도록 유도한다는 뜻이다.
 
국정기획위의 이런 방침에 대해 보험사들은 화들짝 놀라고 반발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사실은 놀랄 것도 없고 반발할 것도 없다. 이런 일이 닥칠 것임은 어느 정도 예견돼 온 일이다. 보험사들이 2016년과 2017년 연이어 실손보험료를 대폭 올렸으니 지금 그 반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사물의 자연스런 흐름이다. 세상 모든 사물의 작용에는 같은 크기의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심상정 의원(정의당)에게 제출한 '실손보험료(영업보험료) 현황'에 따르면 24개 보험사의 실손보험료는 전년보다 평균 18% 인상됐다. 흥국화재는 여성 47.9%, 남성 35.0%씩 보험료를 올렸다. 현대해상과 알리안츠생명을 비롯한 다른 보험사들도 20% 이상 보험료를 올렸다.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상품설계와 보험료 책정을 자율화하자 내 세상 만난 듯이 재빠르게 대폭인상한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인상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11개 손해보험사들이 올해 실손의료보험료를 평균 19.5% 인상했다. 1위 업체인 삼성화재가 24.8% 올린 것을 비롯해 현대해상(26.9%), 동부화재(24.8%), KB손해보험(26.1%), 메리츠화재(25.6%) 등 주요 손보사들이 20% 넘게 올렸다.
 
보험 가입자들의 비난이 빗발쳤지만, 우이독경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보험소비자들의 아우성이 모이고 모여 마침내 국정기획위원회가 손을 대기에 이르렀다. 국정기획위원회는 한 발 더 나아가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 조정폭 규제도 2015년 이전 수준으로 다시 강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금융당국도 연이은 보험료 대폭 인상이 적절했는지 감리한다고 한다. 이렇듯 보험사에 지금 2중 3중의 파도가 밀어닥치고 있다. 보험사가 다시 자율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사실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를 얻었을 때 절제할 줄 모르고 무분별하게 즐긴 결과이다. 한때는 행복했었지만 결국은 멍에를 스스로 불러들인 셈이다.
사실 보험사들이 자유를 올바르게 행사할 능력이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스스로 만든 약관에 들어있던 자살보험금조차 지급하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버틴 적이 있다. 특히 삼성 한화 교보 등 대형 생명보험사가 완강했다. 이들 보험사는 결국 금융감독원의 압박에 밀려 뒤늦게 지급하고 징계까지 받았다. 그럴 바에는 왜 스스로 고 담백한 자세로 지급하지 않았을까?
문재인정부는 지난 9일 건강성보험 보장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건강보헙의 보장률을 높이고 비급여 진료항목을 현재의 3분의 1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 의료비 부담도 상당히 줄어들 전망이다. 아울러 실손보험료 인하요구가 거세질 가능성도 예견되다. 어쩌면 소비자들이 이미 가입해 둔 실손보험을 해약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실손보험은 질병에 대한 불안감과 과중한 의료비에 대한 공포 속에 판매돼 왔다. 건강보험으로 해결되지 않는 질병의 경우 의료비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겁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일찍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에 힘썼다면 실손보험 가입자가 지금처럼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실손보험 시장의 팽창은 정부가 지금까지 국민의 삶을 돌보지 않은 결과 빚어진 슬픈 부산물이다.
 
그런데 보험사들은 질병과 의료비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공포를 틈타 과도한 자유를 즐겼다. 반면 보험소비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보험료 인상을 감수해야 했다. 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실손보험료 규제나 건강보험 보장확대로 이어진 것이다.
 
실손보험 문제에 금융당국이 나서는 것이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올수도 있다.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익을 지켜줘야 할 책무도 있다. 개미처럼 흩어져 있는 소비자를 정부가 아니면 누가 보호해 줄까? 사실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험사들은 지금 정부개입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돌아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자유를 상실할 위험에 처하게 된 요인이 무엇인지.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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