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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도쿄식 비즈니스에서 창업 인사이트를 구하라

고객 취향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도쿄 가게들…‘경험’ 팔며 기존 사업 재해석

2017-07-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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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10년 후의 변화를 예측하기보다 10년 뒤에도 변치 않는 걸 고민해야 합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창업자에게 이 같은 조언을 건넸다.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하는 기술의 시대에 불확실한 미래를 어쭙잖게 예측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대신 그는 예측이 가능하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소비자 니즈와 기업의 본연적 활동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이렇게 할 경우 새로운 관점으로 획기적인 사업 전략을 구상할 수 있고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 아마존 역시 가격과 배송 속도 등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집중한 결과 오늘날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가 될 수 있었다.
 
신간 ‘퇴사준비생의 도쿄’는 이런 베조스의 철학을 하나의 '렌즈' 삼아 도쿄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대기업 출신의 젊은 저자 4명이 시간과 유행에 구애 받지 않고 고객 취향에 집중해 시장을 개척하거나 차별화를 꾀하는 가게들을 직접 뛰며 취재했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 시도와 아이디어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열식으로 언급되는 사례들을 엮는 공통 주제 한 가지는 바로 ‘업의 재발견’이다. 가령, 쌀을 판매하는 아코메야는 쌀을 포대 단위로 팔지 않고 2~3인분 단위로 포장해 판매한다. 고객들이 짧은 기간에 여러 종류의 쌀맛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다양한 쌀 종류로 만든 사케부터 밥 종류와 함께 먹으면 좋을 반찬, 주방기구까지 함께 판다. 쌀맛을 중요시하는 고객의 니즈에 집중해 쌀가게를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판매하는 가게로 재정의한 경우다.
 
카노야애슬리트레스토랑은 합리적인 가격에 스포츠 영양학에 기반을 둔 검증된 식단을 제공하는 업체다. 사업 초기엔 체대생들을 대상으로 음식만 팔았지만 점차 ‘조깅족’으로 타깃 범위를 넓히고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이곳은 이제 음식 뿐 아니라 조깅에 필요한 운동복, 운동화 렌탈, 운동 후의 샤워, 운동 커뮤니티 이벤트 등을 제공하는 헬스 복합 공간이 됐다. ‘건강’으로 시작한 요식업을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으로 확장시켜가고 있다.
 
책의 또 다른 공통 주제는 ‘경험의 판매’다. 고객들이 상품 외에 재미나 지식 등 유의미한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전략은 다른 경쟁사들과 차별화시켜 주는 무기가 된다.
 
센터더베이커리라는 식빵 가게는 손님이 직접 새로운 맛의 식빵을 만들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고객들은 20여종 이상의 국가별 토스터기와 버터, 잼 등의 페어링을 각자 선택함으로써 2000여개 이상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맛을 만드는 재미’를 경험하려 일본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아침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아카데미 힐즈는 지성인들을 위한 복합 문화공간이다. 고급 레스토랑과 바가 어울리는 롯폰기 모리타워 49층을 공부하고 토론하며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지식체험의 장’으로 만들었다. 모리타워 건물은 애초에 도심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게 한다는 취지로 지어졌고 아카데미힐즈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기획됐다. 사람들은 지식을 쌓거나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유료 회원권을 끊고 이곳에 모여든다.
 
수많은 고객 니즈를 고려해 ‘취향 세분화’ 전략을 쓰는 가게들도 주목할 만하다. 시계업체 노트는 5평 남짓한 조그만 공간에서 시계 본체와 스트랩 5000여가지 조합을 판매한다. 시계점 최초로 SPA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 유통비용을 절감한 노트는 명품에 버금가는 이 시계들을 1만엔선에 판매한다. 고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취향의 패션시계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 
 
도쿄 시나가와구에 위치한 소금 전문점 솔코는 도서관 같은 분류 체계로 소금을 판매한다. 원산지, 제조 방법, 원천에 따라 총 7개 카테고리로 나누고 400여종의 소금에 고유번호를 붙여 설명하는 식이다. 고객들은 번호만 보더라도 소금의 특성을 바로 이해하고 구매할 수 있다.
 
다양한 사례의 나열 속에서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하나로 요약된다.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읽고 그에 맞는 회사의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당장 앞으로 뜰 혹은 신선한 아이템에만 집중하려는 창업가나 예비창업자에게 저자들은 도쿄의 사례를 보여주며 ‘변하지 않을 것’에 집중해 볼 것을 권한다.
 
제목에 ‘퇴사준비생’이라 표기돼 있지만 사실 책은 퇴사보다는 창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책의 말미엔 독자들이 더 현실감 있고 심도 깊게 탐구할 수 있도록 집필 당시 참고했던 잡지나 아티클, 영상 등의 링크들이 포함돼 있다.
 
저자들은 “제2의 직업을 고민하는 게 필수가 돼 버린 시대에 우리 모두는 어쩌면 모두가 퇴사준비생일지 모른다”며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한 장인정신, 업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전통 비즈니스의 뛰어난 재해석 등이 녹아있는 도쿄의 가게들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얻길 바란다”고 전한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사진제공=더퀘스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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