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국가와 국민 위해 ‘NO’할 수 있어야

2017-07-25 06:00

조회수 : 4,843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부패한 박근혜 정부는 몰락하고 조기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는 두 달 만에 가까스로 조각을 마치고 지난 대선에서 내건 공약 이행에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먼저 40년 후 ‘원전 제로’를 목표로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를 선포하고, 건설 중이던 신고리 5·6호기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는 ‘원전 찬성’과 ‘원전 반대’로 첨예하게 갈라져 갈등을 빚고 있다. 최저임금을 놓고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 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 인상한 시간당 7530원으로 확정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환호하나 중소기업주·자영업자들은 울상을 면치 못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률 증가를 불러올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추가경정예산으로 공무원 수를 늘려 고용을 창출한다는 새 정부의 방침에 야당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반대를 거듭하고 있다. 새 정부도 박근혜 정부처럼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고 주장했다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마디 하자 그 다음 날부터 여당에서 증세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기에 응원을 보내고 있지만 정책 추진과정을 보면 결코 미덥지만은 않다. 어느 정책 하나 용의주도하게 준비해 일사천리로 끌고 간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열정만 앞서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이런 때 용기 있는 전문가들이 나와 새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정책의 허점을 고발하고 진언을 해줘야 하는데 그런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는 한국처럼 부패한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탄생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만큼이나 국가개혁을 갈망해온 프랑스 국민들은 지난 6월 정치 경험이 미약하지만 신선한 39세의 에마뉘엘 마크롱을 국가수반으로 뽑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존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스템 구축을 위해 시민사회 출신 장관들을 대거 등용하고 우파 정치인을 수상으로 임명하는 등 혁신을 꾀했다. 국제적으로도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기후변화 해법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하는 유연성을 발휘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마크롱 호는 군의 최고 책임자인 피에르 드 빌리에(Pierre de Villiers) 참모총장과 2018년 예산을 둘러싸고 분쟁을 빚으며 출항한지 한 달 보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지난 19일 9시 엘리제궁에서 국방제한 위원회의가 열리자마자 빌리에 참모총장은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믿는 군 모델을 더 이상 존속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사직한다”는 글을 남겼다. 마크롱 대통령이 할당한 내년 국방예산을 둘러싸고 한동안 불협화음이 지속된 후 내린 최종 결정이었다.
 
프랑스의 모든 정치 계급은 빌리에 장군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프랑스 국회는 군 수뇌부의 사직이 5공화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했다. 신좌파 그룹의 올리비에 포르(Olivier Faure) 대표는 빌리에 총장의 봉사정신에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국가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에두아르 필리프 수상을 소환했다. 공화당은 국민전선(FN)과 같이 마크롱 대통령을 헐뜯고 손가락질 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대통령이 부대원들 앞에서 빌리에 참모총장과 엇박자를 낸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필리프 수상은 “각자 자기의 역할이 있다. 참모총장은 자기의 의견을 제시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졌다. 그리고 공화국의 대통령은 다수 여당의 선택을 표현한 것이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에릭 시오티(Eric Ciotti) 의원은 대통령이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고 비난했다. 테러리즘의 위협이 약화되지 않는 가운데 정부가 군비축소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처럼 새 정부가 들어서고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 국방예산을 줄이려 하는 것을 군의 최고 책임자이자 전문가인 참모총장은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일로 여기며 진언을 했다. 그러나 그 뜻이 관철되지 않자 결국 사직하는 용기로 대항했다. 빌리에 장군은 용기를 내어 마크롱 대통령의 무능한 국방비전을 일깨워주려 한 것이다.
 
프랑스의 이러한 사례는 변화의 길목에 서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에너지 정책을 둘러싸고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이라고 한마디 하자 원전정책은 한없이 흔들렸고, 1조6000억원을 투자해 건설 중이던 신고리 5·6호기가 갑자기 중단되었다. 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신고리 5·6호기의 영구중단은 없다고 뒤늦게 기자회견을 해 파장을 일으켰다. 전문가들은 비겁하게 뒷북치고 국민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 아니라, 새 정부가 하는 정책이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용기를 내 진언하라. 빌리에 장군이 마크롱 대통령의 심기보다 프랑스와 프랑스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용기를 내 ‘NO’라고 했던 것처럼.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 최한영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