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구태우

KPX케미칼 단체협약 크게 후퇴…노동자 권리 대폭 축소

2017-07-20 11:45

조회수 : 3,376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구태우기자] KPX케미칼이 복수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사용자에게 불리한 인사 제도를 대폭 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정부는 노동개혁 일환으로 인사·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단체협약 시정을 요청했으며, KPX케미칼은 이 같은 정부 방침을 활용해 단체협약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 정부의 노동개혁이 현장에서는 노동개악이 된 셈이다. 
    
20일 <뉴스토마토>는 신설 노조인 KPX케미칼 제일노조가 회사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단독 입수했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신설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신설 노조의 단체협약은 조합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내용들이 대거 삭제됐다. 
 
기존 노조의 단체협약에 따르면 회사를 매각할 경우 노조와 협의해 고용과 단체협약 등을 승계해야 한다. 공정의 일부를 도급으로 전환할 경우에도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 기존 노조는 경영 상황의 변화로 발생할 조합원의 고용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장치를 마련했다. 반면 회사가 신규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노사는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고 명시, 향후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할 경우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단체교섭과 노사협의회 안건에 대해서도 기존 노조의 단체협약은 ▲안전보건 ▲근로시간 ▲고용안정 등으로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신설 노조는 "단체교섭 대상은 임금 및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한다"고 명시해 사용자의 재량권에 무게를 실었다. 노동계에서는 단체교섭의 대상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노사간 현안이 발생할 경우 사용자가 단체교섭의 대상이 아니라고 교섭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로 퇴직한 경우 조합원의 자녀를 우선채용하고, 채용시 없었던 질병이 발병할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간주한다는 조항도 신설 노조의 단체협약에서는 빠졌다. 임금체계도 다르다. 기존 노조의 단체협약은 호봉제, 신설 노조는 연봉제다.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생산직 노동자의 성과를 측정하기 어려워 시급제와 호봉제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KPX케미칼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 대신 경영상황에 따라 임금을 조정할 수 있는 연봉제를 도입했다.  
 
KPX케미칼이 신설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에서 인사·복지제도를 대폭 개정한 배경으로 박근혜정부가 추진한 노동개혁이 유력하게 꼽힌다. 2015년 4월 고용부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결여된 (단체협약 규정은)개선이 필요하다"며 현장지도 계획을 밝혔다. 고용부가 제시한 인사·경영권을 침해하는 조항으로는 정년퇴직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 등이다.
 
KPX케미칼은 같은 해 8월 ㅇ법무법인과 자문계약을 맺고 임금체계 개편과 단체협약 조항 개선을 추진했다. ㅇ법무법인은 "회사 주도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단체협약상 독소조항을 완화·제거하는 게 필요하다"고 자문했다. 기존 노조는 회사가 박근혜정부가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분위기를 활용, 법무법인의 자문을 통해 단체협약 개악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현재 KPX케미칼은 기존 노조와 임단협 중이다. 지난해 12월 KPX케미칼은 기존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올해 6월 기존 노조와의 단체협약은 해지돼 기존 노조 조합원들은 단체협약에 보장된 권리를 누릴 수 없게 됐다. 2020년부터는 기존 노조 조합원들도 연봉제의 적용을 받는다. KPX케미칼 관계자는 "(이전 단체협약은) 경영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어 2014년부터 개정을 추진했다"며 "이전 정부의 노동개혁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임단협에서 기존 노조에 여러 번 (회사 상황을)설명했지만 대화가 안 됐다"고 덧붙였다.
 
단체협약의 내용이 기존 노조와 비교해 크게 후퇴했다는 질문에 노정기 신설 노조위원장은 "후퇴한 건 맞지만 앞으로 교섭을 통해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KPX케미칼은 법무법인의 자문을 통해 한국노총 소속 노조 파괴 의혹을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18일부터 21일까지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경우 연장한다.
 
 
KPX케미칼노조가 2016년 회사 앞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 구태우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