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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협

(사회책임)‘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열릴까

문재인 대통령, 취임 첫 행사로 인천국제공항공사 방문 비정규직 해소 주문

2017-06-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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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일 만에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취임 후 첫 외부일정이었다. 후보 시절부터 꾸준히 외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공약의 일환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당시 한국경제를 새롭게 디자인한 국제통화기금(IMF)의 노동유연화 정책에 의해 파견 근로 형태의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이후 20년간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우리 경제의 고질병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늘 고용불안·저임금·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정규직 3대 굴레’에 매여 고통 받아야 했으며 기업은 경제위기 극복 이후에도 경영효율화 등의 이유로 싼 값에 쓰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계속해서 늘려왔다. 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이 이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간접고용 형태인 ‘소속 외 인력’ 꾸준히 늘어…팔 걷어붙인 인천국제공항공사
 
문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비정규직 1만여 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요청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은 대부분 ‘소속 외 인력’, 즉 간접고용 형태로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공사 내 ‘소속 외 인력’은 지난 1분기 현재 6903명이다. 올해 말 제2여객터미널이 개통되면 3000여 명이 늘어 1만여 명에 이르게 된다. ‘소속 외 인력’은 대부분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계약한 46개 중소 용역업체의 직원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극심한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용역 업체가 3년 단위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임금도 낮다. 2016년 기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 평균 연봉은 8853만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은 3600만원 정도였다. 이는 원청업체와 용역업체의 계약 방식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은 원청인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용역업체들을 대상으로 용역 계약 경매를 붙인다. 같은 업무를 경쟁업체에 비해 더 낮은 비용으로 맡겠다고 해야 낙찰된다. 계약에 성공한 용역업체는 최대한 줄인 낙찰가로 직원들의 임금을 주고 관리비를 지출하며 이윤도 남겨야 한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관련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문 대통령 앞에서 “비정규직을 연내에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현재 근무중인 비정규직 6900여명과 올해 말 개통되는 제2여객터미널 근무 예정 인력 3000여명을 합쳐 모두 1만여명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달 15일 ‘정규직화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고 현황 파악에 나섰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각 직무가 공항 운영에 어떤 비중을 가지고 있는지, 각 직무에 어떤 보수가 적정한지를 평가하는 작업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수개월 간 모든 공기업에서 이런 식의 실태 조사가 이뤄진 뒤 정규직 전환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은 먼저 공항 운영에 상시적·지속적으로 필요하거나 안전과 생명에 관련된 직무가 먼저 공항 소속 정규직으로 채용될 것이다. 다른 노동자들은 공사가 설립한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고용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는 ‘자회사 정규직’이 또 다른 형태의 간접고용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자회사 형태는 적어도 간접고용보다는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용역업체가 받아가던 중간 수수료를 임금 인상분으로 전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회사는 입찰가로 경쟁하던 용역업체들과 달리 모기업으로부터 안정적인 용역비를 지급받을 수 있다.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으로 실제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다는 것도 나아진 점이다.
 
민간기업에도 정규직화 바람 불어…통신·유통업체가 선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준을 민간기업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는 민간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사회적 합의와 국회 입법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부정책의 우선순위는 공공부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자리위원회의 방침에 따라 생명·안전 관련 업무와 상시·지속 업무는 민간부문에서도 비정규직을 못 쓰게 하는 ‘사용사유 제한 제도’와 300인 이상 대기업에 대해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11%가 넘으면 최소 7000만원을 부담하게 하는 ‘고용부담금’ 제도가 신설될 전망이다.
 
이러한 정부 방침에 발맞춰 민간기업에서도 정규직 전환 바람이 불고 있다. SK브로드밴드가 위탁 협력업체 비정규직 직원 약 5200명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기로 한 데 이어 LG유플러스, 롯데그룹 등도 정규직 전환 흐름에 동참했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달 21일 “서비스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103개 하도급 협력업체 직원 5189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자본금 460억 규모로 설립되는 자회사 ‘홈앤서비스(주)’는 지난 5일 법인 설립 절차를 완료하고 위탁 계약 종료에 합의한 홈센터 구성원을 대상으로 직접 채용하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협력사가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24일 “국내 72개 협력사에 소속된 비정규직 직원 2500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유통업계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유통대기업은 올해 약 7000여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전망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유통계열사 5000명 등 비정규직 근로자 1만 명을 앞으로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그룹 전체에서 약 3500여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된다.
 
외환위기 이후 급속 증가…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66.3%
 
현재 비정규직에 대한 명확한 법적 개념은 없다. 정규직이 아닌 근로 형태를 통상적으로 비정규직으로 부른다. 2002년 노사정위는 ▲파견근로자 ▲용역근로자 ▲일일근로자(건설 일용직 등) ▲단시간근로자 등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했다. 비정규직은 다시 직접고용과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나뉜다. 직접고용은 원도급 기업이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으로 2년 미만 기간제 근로자가 대표적이다. 반면 간접고용은 하도급 기업에 속한 근로자로, 용역업체에 속한 경비?청소 노동자 등이 이에 해당된다.
 
비정규직 확산의 조짐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4월 신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하면서 정리해고 합법화, 파견근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내놓았다. 같은 해 12월 26일 신한국당(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7분 만에 11건의 노동관련법이 처리되었다. ‘평생직장’으로부터 해고될 수 있다는 소식에 노동자들은 크게 반발했고, 시민사회가 이에 호응하면서 반대 여론이 80%에 이르렀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월 노동법 시행을 2년 유예한 뒤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1997년 IMF의 ‘신탁통치’가 시작되면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IMF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노동시장 유연화를 조건으로 걸었다. 이는 자연스레 비정규직의 법제화로 이어졌다. 정리해고 당한 정규직의 자리를 파견 나온 비정규직이 메웠다.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사회적인 이슈가 된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으면서다. 2003년 10월 서울 종묘공원에서 근로복지공단 계약직으로 근무하돈 이용석씨는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외치며 온몸에 불을 붙여 자살했다. 2004년 2월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박일수씨가 “나의 한 몸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실효성 없었던 비정규직 보호법, 오히려 파견직 해고 불러
 
정부는 비정규직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차별 문제가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자 급하게 대책을 제시했다. 2004년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핵심은 계약직·파견 노동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한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혀 국회에서 2년간 계류하다가 2006년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용사유 제한’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과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 법이 시행된 후 대다수 기업이 ‘2년 후 정규직 전환’ 대신 ‘2년 내 해고’를 택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맡는 직종을 나누거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규직화를 피했다. 법을 피하기 위해 몇 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쪼개기 계약’도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당선 이후 국정과제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 전환을 강화하고 정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노동개혁’이라며 내놓은 대책은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근로 확대였다. 결국 사회적 반발에 부딪혀 입법은 무산됐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이전인 2006년 545만 명이던 비정규직 규모는 2016년 현재 664만 명으로 늘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상대 임금은 2004년 65%에서 2016년 53.5%로 감소했다. 이는 비정규직 보호법도, 정부 대책도 비정규직 문제 해소에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건의하며 눈물을 닦는 참석자를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응형·송은하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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