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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2009년 나는)5월 광주항쟁과 택배 노동자 추모

3화. 대전 박종태 열사와 만장

2017-06-0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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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6일 아침에 부랴부랴 마련한 버스를 타고 광주길에 올랐다. 2주 전부터 학내에서 광주민주화운동 체험을 위한 참가자 모집을 진행했지만 그리 많은 학생이 참여하진 않았다. 그래도 간부들은 작년보다는 많은 인원이 참가했다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다.그래도 나름 각 단위별로 광주 기행을 위한 TF 팀을 가동하고 단계적 학습과 선전전을 진행했다. 문과대는 물론 내가 담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1주일 전 먼저 광주로 한번 내려가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당시 광주 현장과 역사 주요 인물 등 설명할 내용을 미리 공부할 겸 한 자리였다.나는 참가 신청을 한 학생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준비한 간이 책자를 나눠줬다. 이윽고 나는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이번 1박2일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맨 먼저 설명해야할 내용이 광주항쟁과 관련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전에서 전국 집회에 참여키로 했기 때문이다.광주 기행 몇일 전 한대련과 함께 박종태 열사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4월 말 택배 노동자이자 화물연대 간부인 박 열사가 휴대폰 문자 해고 통보를 계기로 분신자살했다. 이에 광주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 대오들이 대전에서 열리는 전국 집회에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이다.이때 단위 간부들은 '광주민주화항쟁 기행에 왠 노동자 집회냐' 라는 비판이 당연히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이를 사전에 정리하기 위해 이번 선전전 마지막부터 대전 집회를 설명했다. 출발할 때 이 부분을 가장 먼저 얘기했던 이유도 이때문이었다. 나는 버스를 같이 탄 학생들에게 "29년전 민주화 운동이 여전히 진행중인 상황에서 대전 집회에 같이 참여하자"는 형태로 설명했다. 전태일 열사에 대한 설명을 포함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오글(?)거리는 멘트였지만 다행히 많은 학생들에게 설득은 됐던 것 같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2009년 5월16일 정부대전청사 남문광장에서 집회를 갖고 중리네거리로 이동, 대한통운 대전지사까지 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전 현장에 도착하니 우리 학교 외에도 전국 대학 조직들이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때가 내가 기억하기에 오랜만에 정말 많은 인원이 참가한 집회였다. 물론 이때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보다 보름 전이었다.인원이 많은 만큼, 경찰과의 충돌도 격했다. 만장을 든 노동자들과 경찰과의 대치가 상당했다. 노동자들은 대나무 만장을 부숴 마치 여러개의 작살 모양으로 만들어 전경들과 대치했다. 학생 대오도 선봉대로 착출됐다. 건대 역시 나를 포함해 간부급 남자 몇몇이 선봉대로 참여했다. 그런데 전경들이 서울보다는 좀 서툴렀다. 가시처럼 만든 만장을 든 노동자를 진압하기는 커녕 폴리스라인을 지켜내지도 못했다. 프로야구 포수 마스크처럼 생긴 전경의 투구는 만장을 개조해 만든 작살모양의 무기에 속수무책이었다. 앞쪽 작살이 전경의 눈을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학생 선봉대와 경찰의 대치는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 선봉대와 경찰의 대치는 바로 50미터 앞에서 진행중이었다.


 
이후 노동자들의 집회가 마무리되기 전 학생 조직들은 모두 광주로 향했다. 어느때보다 많이 지쳤다. 많이 걸으면서도 정신없는 집회에서 단위 인원들을 계속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밤 늦게 드디어 전남대에 도착했다. 전남대 대강당에 들어서자 '반미 구국의 철옹성 전남대', '광주항쟁 29주기 추모에 참여한 학생 동지들 환영' 등의 문구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던 것으로 기억한다.이윽고 전남대 학생 대표가 나와 사회를 보며 몇몇 선동무를 선보이는 행사를 했다. 지금 기억은 안나지만 나름 열심히 준비했던 게 틔가 났다. 이후 짐을 푼 우리들은 내일 일정을 복기하며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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