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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정

"돈버는 일터가 아닌 경험을 배우는 일터로"

(사회적기업가를말하다)최근준 OTB크리에이티브 대표

2017-05-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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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임효정 기자] 2009년 겨울. 당시 성인 남성키 만한 화살표 광고판을 현란하게 돌리는 퍼포먼스가 인기를 끌었다. 사인스피닝이다. 사인스피닝은 광고주가 의뢰하면 화살표 광고판에 광고를 새기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광고 기법 중 하나다. 국내에는 광고 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스키, 보드 등과 같이 청년들에게 인기 많은 스포츠 중 하나다. 이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 곳이 OTB크리에이티브다. OTB는 사인스피닝을 통한 광고대행 브랜드 '애로우애드 코리아'에서 출발해 현재 행사대행, 인력운용으로 발을 넓혀 청년들에게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OTB크리에이티브는 '춤추는 광고판'이라고 불리는 사인스피닝을 아이템으로 출발했다. 최근준(사진) 대표는 창립 멤버이자 사인스피닝을 직접 배워 학생들에게 가르친 장본인이다. 서울 홍대앞이나 명동에서 화살표 광고판을 돌리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었던 데는 최 대표의 험난했던 창업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대학생 6명이 모여 창업을 준비했다. 최 대표도 그들 중 한 명으로 당시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청년이었다. 당시는 토익점수, 자격증 등 스펙을 쌓기 위해 열을 올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청년창업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기 전이라 주변에서도 응원보다는 말리는 분위기였다.
 
'취업이 답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최 대표다. "수업 도중 한 외국인 교수가 "한국 학생들은 모두 영어 선생님이 꿈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만큼 대부분이 토익공부만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이 취업을 준비할 때 다른 길로 갔다"
 
취업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최 대표에게 창업은 자연스러운 길이였다. 하지만 쉽지 만은 않았다. 기대와도 달랐다. 창업을 위해 테이블에 둘러 앉아 고민하고 토론하는 자신을 머릿속에 그린 적도 있었다. 현실은 달랐다. 그가 주로 보낸 곳은 회의실이 아닌 올림픽 공원이었다. 창업 준비 6개월 내내 올림픽 공원에서 광고판만 돌렸다. 해외 스포츠를 처음 국내에 들여오다보니 마땅히 배울 사람이 없었다.
 
"맨땅에 헤딩이었다. 유튜브에서 외국인들이 보드를 돌리는 영상을 보면서 배웠다. 재생과 멈춤을 반복하면서 6개월 내내 피켓을 돌렸고, 그러면서 온몸에 상처도 많이 났다. 이후 기술이 숙련된 이후 광화문이나 테헤란로에서 광고판을 돌리면서 고객사를 얻기에 나섰다"
 
첫 고객은 JYP엔터테인먼트였다. 가수들이 새 앨범을 낼때 홍보하는 수단으로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고, 114를 통해 JYP에 전화를 걸었다. OTB의 아이템을 흥미있게 생각했던 JYP는 이렇게 첫 고객사가 됐다. 이후 유튜브를 통해 광고판 퍼포먼스가 인기를 끌었고, 달인을 소개하는 한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오면서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광고판 프로모션이 뜨면서 OTB와 같은 회사가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이내 사업을 접었다. 퍼포먼스를 교육하고 청년들을 고용해 유지하는 데 수익구조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사인스피닝으로 광고대행을 하는 곳은 애로우애드 코리아가 유일하며, 이곳이 바로 OTB가 출발한 브랜드다.
 
청년들에게 경험과 기회의 사각지대 줄이기
 
OTB가 하나의 기업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최 대표는 '청년들'에게 사업방향의 초점을 맞춘다. "사업초기 아르바이트를 위해 회사를 찾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광고판 프로모션 자체가 점포들이 영업하는 평일 낮 시간대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학교를 자퇴한 친구들이 많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이 친구들에게 '건전한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입을 위해 이 곳을 떠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이들이 오래할 수 있는 일도 뒷받침 돼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현재 OTB에 근무 중인 20대 중반의 한 팀장이 있다. 그는 10대 후반 아르바이트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일이 없을 때도 매일 회사에 출근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맘편히 잘 곳이 없어 회사에 날마다 출근했던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공간과 일자리를 제공해야 겠다는 생각만 했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에 대한 생각은 못했었다. 이 친구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 또 많은 경험을 주고 싶었다"
 
2014년부터 행사 대행으로 사업군을 넓힌 배경이다. 그러면서 7명의 정규직을 고용했고, 이들은 이제 이곳에서 인력관리, 행사 기획 등 업무를 맡고 있다. 사업군을 넓힘으로써 OTB를 직장으로 원하는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됐고, 회사의 안정적인 수익구조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현재 OTB크리에이티브 지붕 아래에는 애로우애드 코리아 브랜드를 통해 광고대행 사업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기업들의 행사를 대행하는 업무와 파트타임 인력 필요시 지원해주는 인력운영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인스피닝을 통한 사업은 여전히 활발히 진행 중이다. 사업을 넘어 청소년, 청년들에게 또하나의 문화를 제공한다. 매년 국내에서 사인스피닝 대회를 열어 1, 2등에게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되는 세계대회 출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09년부터 매년 2명씩 보내고 있다.
 
시작은 사인스피닝을 통한 광고대행으로 시작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력운영 회사로 면모를 갖춰가는 게 최 대표의 목표다. 청년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서 그 안에서 꿈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돈만 버는 일터가 아닌 돈과 경험을 얻는 일터'가 그가 지향하는 OTB다.
 
현재 OTB에는 70여명의 가족이 있다. 행사대행이나 인력모집 시 청년들이 원하는 곳을 선택하면 매칭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지난해말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은 것도 70여명의 가족을 위해서다. "지금까지도 옳은 일을 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아이들에게 소속감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우린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어떤 정체성을 지닌 곳인지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사회적기업 인증도 뒤늦게 받게 됐다"
 
OTB는 빠르게 성장해왔다. 창업초기인 2010년 매출 1억원에서 현재 14억~15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람'이었다. 앞으로 아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최 대표다. OTB의 활동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준 대표가 이끄는 OTB크리에이티브에서는 70여명의 청년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OTB크리에이티브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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