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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비정규직 전환, 2013년 판박이?…시점과 배경 '묘한' 일치

2017-05-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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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SK의 '통 큰 결단'이 화제다. SK브로드밴드의 비정규직 직원 52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키로 하면서 민간부문 고용안정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특히 재계 3위의 재벌이 불안정 고용에 놓인 비정규직 문제에 발 벗고 나섰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이어진다. 반면 일각에서는 2013년 한화 사례와 견줘 정권과 여론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 21일 비정규직 52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내놨다. 오는 6월 자본금 460억원 규모의 자회사를 설립, 전국 103개 홈센터에서 대고객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는 방식이다. SK브로드밴드는 내년 7월까지 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 2013년 1월 한화도 상시적 직무에 종사하는 계약직 2043명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했다. 대상은 한화호텔&리조트와 한화손해보험, 한화63시티, 한화갤러리아 등에서 일하는 호텔·리조트 서비스, 백화점 판매, 시설관리, 고객 상담 직종이었다. 당시 한화의 정규직 전환은 10대그룹 가운데 사상 첫 대규모 전환으로 주목받았다. 평가 역시 "재계의 비정규직 채용 관행에서 벗어났다" 등 호평 일색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사진 왼쪽)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사진 오른쪽). 사진/뉴시스
 
유사한 점은 또 있다. 양사 모두 정규직 전환 카드를 들고 나온 시점이 새 정부 출범 직후다. 박근혜정부도 대선 과정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 등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은 물론 취임사에서도 경제민주화를 강조했다. 취임 후 첫 공식 외부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언급, 인천공항공사 소속 비정규직 1만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성사시킬 정도다. 한화와 SK의 정규직 전환이 '새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두 그룹이 처한 처지 역시 판박이다. 당시 한화와 지금의 SK 모두 정권과 여론에 호감을 살 제스처가 필요한 상황으로, '비정규직의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라는 특단의 대책이 강구됐을 가능성이 높다. 한화가 '2043명 정규직 카드'를 꺼내들자 당시 재계에서는 "한화가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고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리기 위해 비정규직의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SK는 문재인정부에서 재벌개혁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처신이 중요해졌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며 "4대 재벌개혁에 집중하겠다"고 말해, SK를 비롯한 4대그룹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게다가 SK는 계열사인 SK건설이 이명박정부 당시 4대강 사업에 참여, 입찰 담합을 벌인 바 있어 현 정부가 4대강 전면 감사에 본격 착수하면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알려진 것과 달리 이번 정규직화는 자회사를 통한 고용으로, 완전한 의미의 정규직화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도 분명하다"며 "자칫 SK가 새 정부의 정책기조와 총수 문제 등을 고려해 성급하게 결정한 것이라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민간부문에서 고용안정을 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판박이로 평가된다. 박근혜정부에서는 한화가 정규직 전환의 첫 테이프를 끊은 후 시중은행 등 금융권과 유통업계에서도 정규직 전환이 줄을 이었다. 이번 SK브로드밴드의 정규직 전환을 계기로 KT와 LG유플러스 등 동종 업계에서도 정규직 전환에 대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관계자는 "LG 같은 곳에서도 '가만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더라"며 "고용문제는 대통령도 강조하고 있고, 민간기업까지 주도적으로 나서면 공공이든 민간이든 변화의 조짐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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