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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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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년 특별기획 '다시 경제민주화를 말한다')⑧재벌개혁 중심에 선 '상법 개정' 논란

2006년 입법예고 했지만 폐기…20대 국회서도 논의 지지부진

2017-05-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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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재벌개혁’을 앞세운 경제민주화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까닭이다. 당장 지난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파행으로 논의가 중단된 상법 개정안 재논의가 점쳐지고 있다.
 
상법 개정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96년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 이후 이어진 편법증여 논란 때부터다. 우선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5년 본격적으로 상법개정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 재벌개혁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그해 6월 취임한 천정배 당시 법무장관은 법무부 내에 위원회를 구성하고, 2006년 10월 정부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 개정안은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의 엄청난 반대를 받았다.
 
천 장관이 장관직을 그만둔 후 자리에 오른 김성호 법무장관은 취임 초반부터 친기업적 색채를 보였다. 취임 4개월 만인 2006년 12월에는 재계·시민단체·학계인사가 참여하는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이중대표소송제’, ‘회사 기회의 유용 금지’, ‘집행임원제’ 등을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재검토하도록 했다. 시민단체에서는 재계가 반대하는 3가지 사항을 재검토하는 위원회를 구성한 것 자체가 편향적이라고 비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중대표소송제는 빠지고, 집행임원제나 회사기회유용금지 부분도 범위가 축소된 형태로 최종안이 2007년 9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됐지만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된다.
 
18대 국회가 시작된 후 통합민주당 박영선 의원들이 이전의 3가지 쟁점을 반영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발의된 지 1~2년이 지나도록 논의가 지지부진 했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다시 경제민주화가 이슈로 대두되며, 지배주주의 부당한 사익추구 행위를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충실히 보호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주요 대선 후보들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공약을 공통적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경제민주화 실천사항으로 대기업집단 지배주주의 사익편취행위를 근절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법무부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2013년에 입법예고를 했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한다면서 해당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19대 국회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소관위원회인 법사위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재 상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도 주요 쟁점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이다. 불합리한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각론에서는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2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 논의와 쟁점’ 보고서에서 경제민주화·재벌개혁과 경영권 유지·방어라는 양측의 관점에서 벗어나 기업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합의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재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내용 중 하나다. 분리선출은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출하고 선임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뽑는 현행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은 지분율 3%까지만 행사하도록 묶인다. 이를 통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이 확대되면서 재벌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재계에서는 1주1의결권 등 시장경제 기본 원칙을 훼손한다고 반대한다. 또한 해외투자가들의 의결권이 확대돼 경영간섭을 받게 될 가능성도 제기한다. 감사위원은 재무상태조사권 등의 권한을 바탕으로 기업의 극비사항에 접근할 수 있어 경영비밀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각 주주가 1주마다 선임할 이사의 수와 동일한 복수의 의결권을 부여받아 후보자 1명 또는 수 명에 집중해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회사가 주주총회를 통해 자율적으로 배제한 집중투표를 법에서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주주총회 현장에 가지 않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입된 전자투표제 의무화도 쟁점이다. 개정안에는 일정 주주 수 이상의 상장회사에 대해 전자투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지만 주주들의 평균 주식보유기간이 단기간인 우리나라의 경우 주주들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워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다중대표소송제기 권한은 해당 회사의 주주에게만 인정된다는 판결이 나온 뒤, 다중대표소송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대표소송은 회사를 위한 공익적 성격이 있고 우리나라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계열사의 대부분이 비상장회사라는 현실을 고려할 때,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다만, 모회사와 자회사는 별개의 법인인데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모회사 주주가 제기한다는 것은 자회사의 주주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자회사의 경영활동에 모회사의 영향력이 강제돼 독립경영의 실현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정거래위원장에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지명된 데 이어 청와대 정책실장에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임명되면서 현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가 재확인됐다는 평가다. 당장 ‘상법 개정’ 재추진 여부가 주목된다. 특히 김상조 내정자는 지난 1월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불리는 이른바 ‘김종인 상법 개정안’이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상법 개정안에 담긴 감사위원 분리 선출 조항을 도입하고,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출시 개별 대주주 단위로 3% 의결권이 제한되는 현재 시행 중인 제도도 최대 주주와 그의 특수관계인까지 모두 합한 지분에 대해 3%로 의결권을 제한해 변경하자는 게 김 내정자의 주장이다.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들의 합산 지분이 큰 4대 그룹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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