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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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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민주주의는 전염성이 강하다

2017-04-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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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된 이후 동아시아 이웃 나라 몇 군데 외신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한 평가, 향후 전망, 정경 유착의 심각성, 대선 전망 등 비슷비슷한 질문이 담겨 있었다.
 
뉘앙스는 좀 복잡했다. ‘구경거리 생겼다’ 정도가 기본이었다. 후진국형 권력 농단 사건에 대한 비꼼, 성숙한 처리 과정과 차분한 민심에 대한 놀람과 인정 등이 뒤섞여있었다.
 
인터뷰 사전 질문지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면서 지난 몇 개월을 돌아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는 헌법과 법률을 철저히 유린하면서 국정농단을 자행했다. 21세기도 이십여 년 가까이 지난 때에 벌어진 일이라곤 믿기 힘든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는 과정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질 부분이 없을 정도로 모범적이었다. 헌법과 법률은 다수 시민의 힘으로 다시 정립됐다.
 
보수와 진보 언론이 앞다퉈 진실을 파헤쳤다. JTBC와 TV조선, 한겨레가 각종 기자상을 휩쓸었다. 원래도 스타였던 손석희 사장은 독보적 존재로 떠올랐다. “아내에게 ‘혹시 내가 죽으면 난 절대 자살할 사람 아니니 타살로 알고 있으라’고 했다”는 TV조선 이진동 사회부장의 취재후기는 언론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연인원 천육백만의 촛불은 너무 자제력이 강했기 때문에 오히려 무서웠다. 국회에선 여당 의원들 상당수의 동의로 탄핵안이 가결됐다.
 
특별검사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 특검, 특검대변인, 미화원까지 스타가 됐다.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파면된 대통령을 수사했다. 법원은 철저한 심사 끝에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시민, 언론, 국회, 헌법재판소, 특검, 검찰, 법원...모두가 헌법과 법률을 준수했다.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을 단죄하는 데는 초법적인 무엇인가는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용기, 직업 윤리, 법률과 헌법이 필요했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헌법에 대해 좀 더 자랑스러워해도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 헌법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겠지만 시민의 힘과 결합해 작동하니 현직 대통령 조차 파면시키고 구속시켰으니 말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인터뷰에 응하긴 아주 쉬었다. ‘애국심’ 혹은 ‘국뽕(?)’에 좀 경도된 것 아닌가 하는 자기 검열기제도 약간 작동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자가 얻은 승리의 경험과 자긍심이 오히려 각자를 제어하는 브레이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차기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검찰이, 언론이 제 각각 입장에서 2016년 겨울에서 2017년의 봄을 돌이켜본다면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뿐인가? 기소된 곳은 물론이고 운 좋게 기소를 피한 대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보도 경험으로부터는 배운다고 하지 않았나?
 
자신 있게 말했다.
 
“한국 시민들은 헌법과 법률의 훼손을 오직 헌법과 법률로 바로잡았다. 그 사이에 어떤 법적 공백도 없었고 큰 틀에서 볼 때 국가 기구들이 시민의 뜻에 반해 반동적 행태를 보이지도 않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성숙을 꼬집는 서구의 우월적 시각도 이제 좀 달라질 것이다. 지난 몇 달 간 한국은 제도의 성숙성과 시민의 열정이 어떻게 절묘하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런 성과 그리고 상당수 여당 의원들의 동의하에 탄핵안이 가결되고 헌법에 의해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장면은 동아시아 ‘주변국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고
 
아마 이 발언들이 전부 다 그대로 방송을 타진 못했을 것이다. 상당 부분 편집됐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들 어떠랴? 민주주의는 전염성이 크기 마련이다. 1919년에도 그랬고, 1987년에도 그랬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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