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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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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공직선거법, 규제 아닌 활성화법 돼야

2017-03-30 07:00

조회수 : 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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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파면에 따른 뒤죽박죽의 정치현장에서 권력과 권한의 공백을 막기 위해 등장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중요 인물들로 부각됐다. 요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각 당의 경선을 지켜보면서 여기에도 권한대행을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회의원 대행, 도지사 대행, 시장 대행 등 말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나 이재명 성남지사, 최성 고양시장(더불어민주당), 유승민 의원이나 남경필 경기지사(바른정당), 홍준표 경남지사나 김관용 경북지사, 김진태 의원(자유한국당) 등 국회의원이나 시·도지사 그리고 시장·군수 등이 현직을 유지한 채 선거전을 뛰는 것을 보면 두 가지 마음이 든다. 첫번째는 불공정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직책을 그렇게 오래 비워둬도 업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하는 것이다. 전자는 선거에 나설 잠재적 경쟁자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고, 후자는 그 직책의 관할에 속하는 공무원이나 시민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정무직 공무원은 대통령부터라도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지 않아 현직을 유지한 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공정한 일인가는 당연히 의문이다. 아무래도 아무 직책을 갖지 않은 사람보다 무엇인가 국회의원이나 시·도지사 등의 직책을 가진 후보자가 네트워크나 사람들의 동원에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 또는 연구직 등은 일정 기간 휴직을 하고, 선거에 입후보하고 싶어도 정치적 중립을 운운하면서 휴직을 허가하지 않는다. 선거에 나가고 싶으면 사직하고 입후보하라는 게 실정법이고 관행이며, 일반의 인식이다. 선거를 위해 휴직을 허용하는 직종은 사실상 대학교수뿐이다. 이같은 현상들은 정무직 공무원의 출마와 비교하면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오히려 불공정한 재갈을 물리는 규제다.
 
공정성의 문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직무유기의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다. 국회의원이 의정을 팽개치고 선거에만 매달린다면, 그는 당분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도지사나 시장·군수가 선거전에 몰두하는 동안은 아무래도 행정에 소홀하지 않겠는가. 저렇게 직분을 팽개치고 유세를 목적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자기 지역구나 관할 행정구역의 현안이 아닌 다른 지역의 현안을 챙기는 정치가가 어떻게 맡은 직분을 잘 돌볼까.
 
누군가는 부지사나 부시장이 있고, 이들이 유능해서 도정이나 시정이 문제없이 돌아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하루에 18시간을 뛰어다녀도 행정을 다 처리하지 못해 사생활을 포기하기까지 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이런 논리에 동의할 수 있을까. 대선전에서 뛰는 국회의원은 자리를 계속 비워도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거에 나가는 지자체장이나 국회의원들은 휴직하거나 급여를 받지 말아야 한다.
 
현직을 유지하고 선거전에서 뛰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을라치면, 지금 우리나라가 대통령이 없이도 국가의 문을 닫지 않고 그럭저럭 돌아가고는 있으니 괜찮기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관련된 문제가 아예 없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유고 중에는 국무총리가 있더라도 별도로 권한대행이라는 직책을 세워 권력의 공백을 막는다.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또는 시장도 선거전에 돌입하기 전에 권한대행을 세워 행정권의 공백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무직 공무원이 권력자가 아니라 낮은 보수를 받는 자원봉사자를 자임한다면, 또 생활정치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정무직 공무원들만 현직을 유지하고 선거에 나가도록 허용한 것은 불공정하고, 정의에 반한다. 우리 정치가 고비용 정치가 아니고 공직이 엄청난 권력과 재력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면, 그래서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등 정무직 공무원이 선거에 출마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직종의 사람들도 쉽게 선거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더이상 옛날의 가치관으로 선거를 바라보지 말자. 아예 백수거나 정무직 현직만 선거에 입후보해서는 안 된다. 학생이나 주부 또는 은퇴자도 쉽게 선거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고비용 정치구조를 청산해야 한다. 불공정한 선거제도도 고쳐야 한다. 선거에 나서는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등 정무직들도 자기가 봉사하는 관할구역 내 시민들을 위해 사직하여야 한다. 그것이 정의에 맞다. 공직선거법 뒤에 숨을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직선거법은 규제가 아닌 활성화법이 돼야 한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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