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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母情

2017-03-28 21:40

조회수 :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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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에서 생선을 팔며 사는 재중은 그 해 막 불혹을 넘겼고 위암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해온 예순네살의 노모가 있었다.

재중의 노모가 위암판정을 받은지 꼭 2년째 되는 그 해 12월 14일.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담당의사의 말에 재중은 오히려 담담했다.

"할 만큼 했잖어? 씨벌....쿨럭...."

1년 전, 암덩어리가 아귀처럼 달라붙은 노모의 위를 꼭지만 남기고 잘라버릴 때만 해도, 살아계셔만 달라고 중환자실 벽을 주먹이 뭉개지도록 치며 울부짖던 재중이었지만 이젠 그럴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독감으로, 밭은 기침을 해대며 병원 현관앞 계단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무는 재중의 어깨엔 굵은 겨울비가 떨어졌다.

스물 넷.

춘삼월 보릿대마냥 새파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노모는, 재중이네 삼남매를 건사하기 위해 몸파는 일 빼고는 안해본 것이 없었는데 재중이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는 남의 집 추수를 거들다가 커터기에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두마디씩 잘랐다.

사춘기였던 재중은 뭉툭해진 노모의 손이 그렇게 창피하고 싫을 수가 없었고, 그 때 이후로 노모는 재중의 얼굴을 한번도 쓰다듬을 수 없었다.

재중이 노모의 뭉툭한 손이 슬퍼보일 때 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해준다는 무료검진을 받기 위해 동네 할머니들을 따라 보건소에 갔던 노모는 위암판정을 받았지만, 돌아오는 길에 활명수만 한박스 사왔고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재중이 노모의 위암 사실을 알게된 건 공교롭게도 노모의 생일이었다.

예순을 갓 넘어 허리가 휘고 한 줌 마른 꽃 처럼 말라가면서도 늘 속이 좋지 않다며 밥 몇술을 물에 말아넘기던 노모의 생일 날, 재중은 정육점에서 소고기 반근을 끊어 미역국을 끓여드렸지만 노모는 한술도 채 뜨기전에 허리잘린 옥수숫대 마냥 밥상에 고꾸라졌다.

수술 할 필요도 없다는 의사를 윽박질러 노모의 위를 거의 잘라내고는 재중은 매일 울면서 노모의 병수발을 들었고, 하늘도 감동했는지 잠시 기력을 찾는 듯 했지만 얼마 않가 노모는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야 했다.

노모를 중환자실로 옮긴 후, 그나마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잠깐이라도 노모를 볼 수 있는 것에 재중은 '하나님 ,부처님'찾아가며 어린애처럼 감사해 했다.

그러기를 한달.

노모의 병원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했던 재중은 수산시장 새벽바람에 그만 독감에 걸렸고, 그 후로는 노모가 누워있는 중환자실에는 얼씬도 못했다.

그런 재중에게 병원으로부터 노모를 만나도 좋다는 연락이 온 것은 그 후 일주일 쯤 지난 새벽 3시. 

회복실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쉬는 노모에게 차마 다가가지 못하던 재중을 노모는 힘겹게 손을 저어 불렀다.

재중이 그렇게 보기 싫었던 그 뭉툭한 손으로.

무릎을 덜덜 떨며 겨우 노모의 침대 맡에 앉은 재중에게 노모는 핏기 없는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뭐라구요? 쿨럭 쿨럭... 아, 크게 좀 말해요.쿨럭쿨럭"

'이놈의 기침'

재중은 밭은 기침을 내뱉는 자신의 입을 움켜쥐고 노모의 입에 귀를 갖다 댔다.

재중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짓던 노모는 힘겹게 숨을 한번 삼키고는 두 손으로 재중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구... 우리 재중이... 감기 걸렸구나... 어쩌누... 우리 애기 감기 걸렸네... 빨리 나아야 헐틴디... 빨리 나아야..."
 
 
 
- 최기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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