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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정

(위기의 600만 소상공인)①진저리 나는 임대인 갑질

상가임대차보호법 '있으나 마나'

2017-03-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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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임효정·정재훈기자] 한국경제의 주춧돌인 소상공인들이 설 곳을 잃고 있다. 최악의 소비절벽을 겪고 있는 내수시장에서 설상가상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따라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소상공인들의 눈물샘은 마를새가 없다. 연 2조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형편은 나아지질 않는다. 조기 대선국면을 맞아 소상공인 보호라는 화두가 또다시 떠오르고 있다. 선거철 표심을 의식한 공약이 아닌 현실적인 대안을 바라는 소상공인들의 마음이 여느 때보다 간절하다. 소상공인은 도소매업과 서비스업 등은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제조업·광업·건설업·운수업의 경우 10인 미만의 기업으로 정의된다. 국내 소상공인은 2014년말 기준 전체 사업체의 86.4%(306만개), 종사자의 37.9%(605만명)를 차지한다. 600만 소상공인이 처한 현실을 짚어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
 
#.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대 상권. 하지만 정작 상권을 만들 원주민들은 가파르게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내쫓기듯 떠나고 있다.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2년 계약 만료를 앞두고 건물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임대료를 50% 올려달라는 얘기였다. 3년전 가게를 오픈할 당시만 해도 아직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서 임대료와 권리금이 저렴한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 2년새 임대료는 두 배로 껑충 뛰었다. 이 동네는 대체로 2년마다 임대료를 올리는 것이 관례가 됐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얘기다. 김모씨는 맞은편 건물을 가리키며 "2층 식당도 얼마 전에 가게를 접고 나갔다"며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점심이면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집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임대료 문제였을 것"이라고 한숨을 토해냈다. 그는 이어 "나도 가게를 접고 나갈 생각이다. 이미 지난달에 가게를 내놨다"며 "다시 가게를 하더라도 소위 뜨는 동네, 핫플레이스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절대로 장사를 안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대료가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임차인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높아진 임대료는 여전히 상인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상가임대료·권리금 상승에 따른 피해 사례는 외환위기 이후 속출하기 시작했다. 한국감정원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 상권 임대료는 연평균 3.5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서울은 5.01% 증가했으며 홍대는 11.36% 급등한 것으로 조사됐다.
 
상가임대료를 두고 갈등이 끊이질 않자 법제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상가임대차 보호법은 2001년 제정 이후 2013년, 2015년 두 차례의 개정을 통해 임대차 보호법 적용 범위와 대상을 개선해왔다. 이에 따라 현행법에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계약 갱신을 요구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최초 계약 후 5년까지 보장하고 임대료 증액 상한을 연 9%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두 차례 법 개정이 이뤄졌음에도 소상공인들의 임대료 부담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고 있다.
 
정인대 전국지하도상가인연합회장은 "상가임대차 보호법은 2015년 5월 개정됐지만 여전히 임대인을 위한 보호법이지 임차인을 위한 법이 아니다"며 "임차인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독소조항은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법령이 소액 임차인 보호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게 소상공인들의 불만이다. 정 회장은 "2~3년 고생해야 상권을 구축하는데 그동안 고생해서 장사가 되려고 하면 '임대료'라는 높은 장벽이 생긴다"고 말했다.
 
‘환산보증금 제도’를 도입한 현행법은 일정 보증금 이하일 경우에만 법의 보호가 가능하다. 환산보증금이란 보증금에 월세의 100배를 더한 금액으로 서울의 경우 4억원, 지방은 1억8000만원 이하로 제한된다. 해당 환산보증금 이하일 경우에 한해 상가임대차 보호법을 적용받는 셈이다. 
 
문제는 소위 뜨는 동네인 '핫플레이스'는 대부분 법의 테두리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서울지역 내에서 보증금 1억 5000만원에 월세 300만원인 상점의 경우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X100))은 4억5000만원으로 상한선을 넘게 된다. 즉 임대인이 9% 이상 임대료를 올려도 임차인은 법으로 대응할 수 없다. 2년전 이태원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이모씨는 "보증금 1억원, 월세 350만원에 가게를 운영했었다"며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리면서 임차인과 시비가 붙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했고 결국 '을'인 임차인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상수동의 경우도 홍대 상권이 넓어지면서 급속하게 변화된 동네다. 상수동에 위치한 부동산 주인은 "이 근처에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4년 사이다. 그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며 "예전에는 홍대근처만 상권이 형성됐었다. 이 상권이 동서남북으로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 합정동, 상수동까지 팽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시세도 뛰어올랐다. 3~4년 전 평당 2000만원 수준이었던 시세가 현재 평당 5000만원으로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임대료 역시 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날 만큼 치솟고 있다.
 
이에 따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지역을 떠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oin)'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환경의 변화로 중·상류층이 도심의 낙후된 지역으로 유입되고, 이로 인해 임대료 등이 상승하면서 비싼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동네만의 특색을 갖춘 상점들이 떠난 자리는 임대료를 감당한 여력이 있는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들이 대신하고 있다.
 
임대료 상승에 쫓겨나는 소상공인이 줄을 잇자 현행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도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상가임대차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모든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환산보증금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주요 상권의 임대료 인상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9%인 임대료 인상 상한율과 5년인 계약갱신청구권 보장기간도 재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상점. 높은 임대료에 문을 닫았다. 사진=뉴스토마토
 
임효정·정재훈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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