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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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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정경유착)③퇴장…국정농단과 재벌개혁 과제

악순환의 반복…"재벌이 바로서야 한국경제가 산다"

2017-02-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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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대한민국이 부패 청산의 기로에 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경유착의 적폐가 드러나면서 재벌에 대한 국민 악감정도 절정에 다다랐다. 돌이켜보면, 미군정 적산불하를 계기로 재벌과 권력의 부정한 결탁이 시작돼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재벌 독식’ 현상이 굳어진다. 부정축재자 처리 문제도 흐지부지됐고, 재벌이 불법 정치자금을 대는 부패의 공고화가 나타났다. 정경유착의 속살이 드러나도 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면서 재벌은 또 다시 권력에 줄을 대는 만성화의 길도 걷는다. 종국에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르면 5월 치러질 차기 대선도 정경유착 근절을 빼놓고는 논의가 힘들게 됐다. 여기에다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로 요약되는 민생의 위기 속에 재벌의 경제 기여도도 더 이상 힘을 잃게 됐다. 낙수효과가 실종되면서 재벌 중심의 성장전략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불신과 갈등의 벼랑 끝에서 경제위기의 파고를 넘기 위한 최대 승부처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그 중심에 재벌이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90일간 대장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달 28일 1차 수사기간이 만료된다. 삼성의 뇌물공여 혐의 입증에 전력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했으나 SK, 롯데, CJ 등 다른 대기업 수사는 숱한 의혹에도 제대로 파헤치질 못했다. 특검은 수사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승인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례적인 특검의 칼날에 깜짝 놀란 재벌들은 준법과 투명경영을 다시 강조하고 나섰다. 촛불로 대변되는 여론의 뭇매도 재벌의 변화를 끌어냈다. 삼성은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며 조직 쇄신과 투명성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 부회장 구속으로 존속 가능성도 일부 제기됐지만, 당초 약속대로 특검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행한다는 방침이다. 10억원 이상의 기부금은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고 그 내용을 공시하는 등 불법 정치자금 경로의 차단에도 나섰다. 롯데도 조직개편을 통해 경영혁신실과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위원회 조직을 마련했다. 준법경영 관련 규칙과 정책을 정비하고 계열사 감시 기능을 높인다는 취지다.
 
 
과거 사례를 뜯어보면 불안감은 지울 수 없다. 삼성은 2008년 6월 특검 수사결과 발표 직후 전략기획실을 해체했지만 2010년 12월 이름만 바꾼 미래전략실을 신설했고, 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이건희 회장은 2010년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차명계좌 실명전환 관련 1조원대의 사회환원 약속은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SK는 2004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건으로 최태원 회장이 구속되면서 구조조정본부를 폐지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놨다. 최 회장은 2004년 구속 후에도 2013년 다시 횡령·배임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2015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 이듬해 정기주주총회에서는 국민연금 등의 반대에도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선임됐다. 현대차도 정몽구 회장의 횡령 및 배임혐의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06년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놨다. 이중 사회환원 약속은 완료됐으나, 일자리 창출 및 협력사 지원 약속에 대한 이행 내역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정부의 모금 창구역할을 해왔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순실 사태로 4대그룹이 탈퇴하는 등 해체 위기에 내몰렸지만 규모를 줄여서라도 명맥을 유지할 방안을 찾고 있다. 갖가지 명분으로 여러 재벌 회장들이 여전히 미련을 보인다. 허창수 GS 회장은 당초 물러나겠다던 약속을 번복하고 4연임을 결정했다. 정경유착 근절 등 쇄신안을 꺼내들었지만,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을 주도한 전경련 회장인 까닭에, 사태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쇄신 주체가 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비판이 많다.
 
재벌 개혁의 단초가 될 경제민주화 법안도 봇물이 터졌지만 입법 성과는 초라하기만 하다. 2월 임시국회가 내달 2일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여야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자칫 ‘용두사미’로 끝날 형편이다. 최대 쟁점 법안인 상법개정안은 지난 23일 열린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야가 합의했던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 의무화 항목조차도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보류됐다. 적용범위 등을 축소시켜 여야 절충안을 처리할 바엔 아예 상법 개정을 미루는 게 낫다는 지적도 나온다. 절충안은 정치권의 면피만 될 뿐, 재벌 개혁에 대한 개정 취지를 훼손할 것이란 우려다.
 
 
정경유착의 근절은 결국 법치주의가 관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죄가 불거질 때마다 재벌을 대변하는 전경련을 축으로 경제위기론이 대두됐고, 집행유예와 사면이 반복되는 솜방망이 처벌로 부패를 뿌리 뽑지 못했다는 시각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금수저 흙수저’의 비관론을 낳아 청년층의 연애와 결혼, 출산 포기라는 ‘3포세대’로 비화되고 있다. 저출산과 저성장의 악순환에 갇힌 국가적 위기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경제논리에 밀렸던 사회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정경유착이 해소되지 않는 배경은 정치권과 재계가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상호 공존하기 때문”이라며 “이를 법으로 통제해 죄를 저지른 기업인이나 정치인은 실형을 살도록 하고, 해당 업계나 분야에서도 영구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도 “정경유착의 가장 큰 문제는 죄를 짓고도 그에 응당한 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한다면서 입맛에 맞는 것만 취하고 특경가법은 미국과 비교해 형편없는 수준”이라며 “재벌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순환출자 등 현행 공정거래법만이라도 제대로 실행시켜 집중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하니까 그것을 이용해 정치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정경유착이 일어나고 정치나 언론이 제대로 통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벌 총수의 사익 추구 등 전횡이 심하다"며 "이런 통로를 없애야 재벌도 경영권에 집착하면서 불법을 자행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에 제재를 가하는 게 보다 효과적이란 의견도 있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정경유착은 재벌과 정치권력이 공범이지만 어느 쪽을 막는 것이 공리의 차원에서 효과적이냐를 따질 필요가 있다”며 “성매매도 파는 쪽을 막는 것이 더 효과적이듯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전문성, 민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는 현 재벌 행태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며, 재벌이 바로 서야 국가경제가 제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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