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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시론)우리사회 잘못된 풍토가 '우병우'를 낳았다

2017-02-21 06:00

조회수 : 45,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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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 명 중 20명. 우리나라 검사 가운데 100분의 1도 안 되는 수의 파견검사를 가진 특검이 이재용 등 수많은 세도가와 ‘법꾸라지’들을 구속했다. 가히 사상 초유의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시민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체 검찰은 왜 존재하는 것인지. 그동안 뭘 한 것인지.
 
자타가 공인하는, 잘 나가는 법관이나 검사의 자존심은 당연히 하늘을 찌른다. 특히 중앙집권의 역사가 길고 과거급제의 환상이 지배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소년등과해서 채 서른도 되기 전부터 영감님 소리 들으며 공직 생활을 시작하고, 재직하는 동안 내내 '슈퍼 갑'의 위치에 있어 어딜 가든 떠받들어지며, 인사문제를 제외한다면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할 일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토록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 왜 자신의 과오나 권력에 대한 굴종을 포함한 불공정한 직무수행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과거 독재정권을 떠받친 각종 고문수사 사건과 시국사건 재판에서 수시로 구부러지거나 비틀어진 잣대로 시민들에게 재앙을 안긴 행태에 대하여 진솔하게 사과하고 엎드려 반성하는 모습이 없는 이유가 뭘까. 하물며 자기 스스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행태를 보이고도 당당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이는 건 왜일까. 법률가라는 김기춘, 조윤선, 우병우는 왜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할까. 그들의 머리와 가슴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다들 경험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교육은 협동과 책임, 연대와 공정의 가치보다는 경쟁과 승리를 앞세우고 공부만 잘하면, 아니 시험만 잘 보면 모든 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시험 치는 재주가 탁월하고,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었으며 시험성적만을 척도로 우등생을 식별하는 시스템에서 늘 칭찬과 부러움 내지 자랑의 대상이었다.
 
이건 학벌위주,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어른이 되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나 인품보다는 성적과 학벌만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버릇이 생기고, 권위에 도전하거나 기존의 질서에 항거하는 사람을 보면 옛적 자신과의 비교 대상이면서 언제나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던 '불량 학생'을 떠올리며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주어지는 과제와 시행되는 문제풀이 능력에 최고의 성과를 보여 그 자리를 쟁취한 것이므로 자신이 누리는 권위나 지위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자신을 인정하거나 임명하고 승진시키는 이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을 모범생이 취해야 할 당연한 도리로 여긴다.
 
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사람은 결코 짐승처럼 자본의 필요나 관객의 박수갈채를 위해 맹목적으로 길들여질 존재가 아님에도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놀이공원 등에서 보여주는 조련된 동물들의 기막힌 묘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동물들은 기나긴 훈련과 인내의 시간을 보냈고, 그 결과 본능처럼 몸에 밴 동작을 수행하면 달콤한 먹이를 얻는다. 이들이 조련사에게 대항해야 할 이유는 언젠가부터 사라진다. 당연히 자유의지와 야성도 스러진다. 수많은 관객들이 보내는 박수갈채도 당연한 것이며 그 결과 얻어내는 대가로서의 먹이를 받고 누구에게 미안해하거나 감사해야 할 이유는 없다. 먹이와 박수갈채는 분명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낸 대가일 뿐이기에. 그리고 먹이를 던져주는 조련사에게 복종하는 한 그 대가는 영원할 것이므로.
 
그러니 어떤 성취나 출세도 계속 갈증을 더할 수밖에 없다.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된 이들은 그렇게 영혼을 잃고 쉼 없이 자리를 탐하는 좀비가 되어가는 것이니. 더 큰 문제는 이런 재주부리기용 애완동물들이 지금도 일부 학부모들의 왜곡된 욕망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된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면서.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래서 우리사회의 명예와 품격을 높이는 새로운 계기가 되어야만 한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갖고, 많이 누린 이들일수록 더 뻔뻔하고 더 악랄하게 거짓과 위선을 추종하는 현실을 이젠 분명히 바꿔야 한다.
 
이화여대는 학생들이 바꾸었고, 대한민국은 촛불시민이 바꾼다. 이대 총장은 마침내 구속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과 법률을 어긴 대통령뿐이다. 이 나라의 주인은 분명 국민이다.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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