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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당신은 월급을 너무 적게 받는다

똑같이 앉아있다고 똑같이 일하는건 아니다

2017-02-18 19:31

조회수 :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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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월급봉투를 받고 많은 생각을 한다.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정말 일을 안하거나 겸손한 사람이다. 후자는 정말 일은 많이 하거나 혹은 일한거에 비해 욕심이 많은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따지면 일한만큼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먼저 일의 가치를 정확히 따지기가 쉽지 않다. 사실 논리적으로 들어가면 정말 제대로된 월급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공사장 현장이나 다리를 만들거나 공산품을 만드는 제조업이나 농민들 정도다. 
 
나머지 서비스업이나 공무원 등에 속하는 분야는 생산직의 반이나 혹은 반의 반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 일종의 서포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아니라는 반론도 많다. 어쨌거나 가치를 따지는 것은 경제학에서 여전히 풀지못한 숙제 중 하나기 때문에 내가 받는 월급이 적은지 많은지 적당한지는 사실 밝히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소방수 아저씨가 우리보다 더 적은 월급으로 겨우 생활하시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직업 베스트 5에 든다. 고리대금업자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없는 직업 베스트 5에 들지만 타워팰리스에서 잘 사신다. 이런 경우는 너무 많아서 따질려면 머리가 터질 정도다. 
 
그래서 가끔은 직업을 대할때 자신의 노력과 회사의 사정, 그리고 자신의 열정 등 모든 요건을 골고루 고려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가치관도.
 
똑같이 앉아있다고 다 똑같이 일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월급은 거의 비슷하다. 그럼 왜 그런지 일하는 모형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도록 하자. 
 
(주)하나는 당기에 제품 A를 1500단위, 제품 B를 1000단위, 제품 C를 500단위 생산하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기계절삭작업에 100,000원, 조립작업에 80,000원 품질검사에 40,000원의 제조간접원가가 소요되었다. 당사는 활동기준원가계산을 시행하고 있으며 관련자료는 아래와 같다. 

 
 
기계를 예로 들었다. 사람을 예로 들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건수, 매출, 정성, 효과, 질, 파급력, 사람들의 관심도 등 이런 요소들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해 가늠할 수 있다고 하자. 모든 일은 사실 수치화로 전환가능하다. 굳이 예로 들지 않겠다. 너무 잔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활동중심점별로 먼저 배부율은
 
 
활동중심점별로라는 것은 굳이 비교하면 부서를 뜻한다.
 
제품별 활동원가
 
 
제품별 활동원가를 굳이 비교하면 각 부서원이다. 
 
단위당 원가는 굳이 비교하면 이 부서원들의 가치다. 줘야할 월급인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가 너무 뚜렷하게 보인다. 
 
결론은 각 부서별 성과를 모두 모아서 각 개인별로 기여도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계에 적용한 것이다. 사람도 다를바는 없다. AI가 더 발전하면 개인별로 집계하는 것은 더 디테일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노동의 가치라는 것과 그에 대한 기여도라는 것은 사실 답이 다 나와있다. 그렇게 되면 인류의 비밀이 드러나게 되니까 사람들은 조용히 입다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알아서 가치와 기여도를 찾아서 이동한다. 왜 자신의 가치에 걸맞지 않게 대우를 해주지 않느냐고 막상 따지지 않는 것이다. 왜일까?
 
노동도 시장이라 항상 열려있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시장참여자들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격에는 그 상품의 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르는게 약이다.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그 가치와 기여도를.
 
혹자는 인간의 노동에 대해 너무 잔인하게 대하는 것 아니냐고 반론을 낼 수도 있다. 무엇이나 다 소중한 직업이라고 주장하며.
 
단언컨데 그렇지 않다. 선생들이 가르친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이 제일 잘 알지 않는가? 감사한 마음으로 직장을 다니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맡은일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통계청은 거짓말로 먹고살기 때문에 100만 실업자는 거짓이다. 현대경제원이 거짓을 조금만 해서 300만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400만명이라는 말이다. 그것도 청년실업자만. 
 
자본주의를 선택했다면 당신은 경쟁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경쟁으로 누군가는 나락으로 떨어져왔었다. 실업자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자본주의의 운명이다. 즉 볼트와 너트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밖에 없다. 어쩔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니까. 
 
옛 어르신 말이 틀린게 하나도 없다. 꼰대같던 어른들은 "잘먹고 잘살려면 공부해", "세상을 바꾸려면 데모하지 말고 공부해"라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모두 각자의 책임이다. 잊지 마시길. 여기는 정글이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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