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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연

중도 코스프레

2017-02-12 18:42

조회수 :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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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일 보도된 한국지엠의 노조간부 비리 사건을 두고 친구들과 논쟁이 붙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시비를 걸었다고 하는 게 맞다. ‘귀족 노조’라는 말로 노동조합 전체를 비난하는 걸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노조간부가 경영진과 결탁해 비정규직에게 돈을 받고 정규직 채용에 관여한 사건. 팩트 자체는 노조의 잘못이 맞다.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걸 다루는 언론이 ‘중립적이고 드라이하게’ 사안을 처리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팩트 처리 이상이 필요한 사안 아닌가? 물론 소위 ‘진보 언론’으로 불리는 매체들 말이다. 노동문제에 좀 더 천착해주길 바라는 내 기대가 무리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한국지엠 보도 말고도, 목요일 백화점 판매원의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다. 한겨레와 경향의 기사는 드라이했다. 조중동의 기사와 큰 차이가 없다. 판결을 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 의문이 드는 건 덧붙이는 해설기사 하나 없었다는 거다. 택배기사, 화물차기사, 학습지교사 등 사실상 사용자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성과에 내몰리는 이들이 노동자임을 법원이 처음 판결한 거였다. 왜 이들이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을 맺어야만 했는지, 조직되지 않은, 모래알같이 흩어진 개인이 자본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한 구조가 왜 우리 사회에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듯이 스며들어 문제의식조차 느낄 수 없는지를 왜 진보언론이 친절하게 짚어주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걸 용인하는 법의 사각지대가 뭔지, 왜 고쳐지지 않는지, 등등....지적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출처/ flickr
 
진보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가 왜 이들을 진보언론이라고 부르는 걸까? 급격한 산업화 이후 우리 삶을 규정해 온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평범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었다는 걸 드러내야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진보언론은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지엠이나 백화점 판매원에 대한 진보언론의 보도 태도가 중립 코스프레로 보이는 이유다. 감정적으로 편을 들라는 게 아니다. 판결의 의미와 가려진 배경을 짚어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를 얘기해줘야 하지 않냐는 거다. 보도해도 다른 언론이 받아쓰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받아쓰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전에 왜 받아쓰지 않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단 한겨레 기사는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다. 안다. 쉬운 얘기를 다루지 않고 있고, 그 얘기를 빼면 본질을 짚지 않게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얘기하면 요구사항이 너무 많은 걸까?
 
아주 오래 전부터 한겨레를 좋아했다. 한겨레가 신문 자체였고,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듯, 그렇게 한겨레를 좋아해왔다. 더 많이 기대하게 되고 기대에 못 미치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 그래서 이번주 한겨레의 노동 관련 기사는 실망스러웠다. 참신한 기획이나 발굴 기사도 좋지만, 우리 삶을 규정하는 사안을 좀 더 깊이 파고들고 다시 그게 어떻게 우리 삶을 규정하는지 알려주는 기사가 지면을 더 많이 채웠으면 좋겠다.
 
노동자가 단결권이나 파업권을 행사하는 게 기업 경영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보수의 입장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근거가 돼줄 기사들이 더 많이, 더 친절하게 쓰이길 바란다. 친구와 논쟁에서 한겨레와 경향의 기사를 들어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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