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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치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2017-01-23 14:04

조회수 : 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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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화제의 인물은 단연 뉴욕에서 돌아온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날개를 펼칠 줄 알았건만, 연속되는 해프닝으로 구설수에 오르며 대권주자로서의 자격마저 의심받는 처지가 됐다. 종합편성채널들은 이구동성으로 “정치는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며 반 전 총장을 희화화했고, 인터넷 상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 넘쳐났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며 이번 대선도 크게 기대할 것이 없을지 모른다는 페시미즘(비관주의)이 커졌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 우리는 정치력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치열한 싸움보다 후보들이 남발하는 포퓰리즘 공약만을 구경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누가 실력이 있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 좀처럼 구분할 길이 없었다. 결국 과반수 이상의 국민은 박근혜 당시 후보의 ‘원칙과 신뢰’를 높이 산다면서 대통령으로 선택했지만 박 대통령은 헌정을 유린하는 사상초유의 부끄러운 역사를 쓴 장본인으로 남게 되었다.
 
이번 대선만큼은 분명 달라져야 하지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우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직까지 정책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스타’를 대통령으로 모셔오려는 일부 정치인들과 이에 열광하는 유권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변한 정책도, 로드맵도 제시하지 못한 반 전 총장을 유권자 21.8%가 지지하고 있다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팔 정치상품을 내놓지도 않았는데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으니, 반 전 총장이 한국정치를 너무 쉽게 보는 것도 일견 자연스러워 보인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경력을 너무도 높게 평가해주는 우리 국민들의 환호를 보며 ‘대통령이라는 자리도 쉽게 거머쥘 수 있겠구나’라는 착각에 빠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쉽게 정치인의 옷을 입고 각종 퍼포먼스를 벌일 수 있겠는가.
 
정치는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구체적인 액션이다. 한국 정치가 불안정하고 지리멸렬한 것은 이러한 정치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정치는 어떠한가. 지난 1월22일 프랑스에서는 좌파들이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해 오픈프라이머리 1차전을 펼쳤다. 4명의 사회당 멤버와 녹색당, 민주환경연합, 그리고 좌익급진당 출신이 각각 1명씩 출전해 총 7명이 싸운 이 전투에 약 200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했다. 지난 해 11월 벌어진 공화당의 오픈프라이머리에 300만 명 이상의 유권자가 참여한 것과 비교하면 열기가 좀 식었지만 그래도 나름 성공적인 한판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언론들은 후보들의 첫 텔레비전 토론이 끝났을 때 “좌파의 이번 오픈프라이머리는 후보 간의 차이점이 없는 맹탕 선거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2·3차 토론이 이어지면서 후보 간 변별력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여론조사 결과와 전혀 다른 이변이 연출되었다. 당초 가볍게 본선에 오를 것이라고 점쳐졌던 마뉘엘 발스 전 수상은 의외로 어려운 싸움을 벌였고,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49세의 브느와 아몽 전 교육부 장관은 1위로 우뚝 올라섰다. 35.21%를 얻은 아몽 후보가 31.56%를 얻은 발스 후보를 과연 다음 주 결선투표에서 누르고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니다.
 
아몽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그의 신선한 프로젝트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몽은 프랑스의 사회보장기금 마련을 위해 로봇으로 돈을 버는 부자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을 만들자고 제안해 반향을 일으켰다. 현 올랑드 대통령은 이 제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전대미문의 개입을 해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경제를 위해 로봇은 필요하다. 만약 기술 혁신이 없다면, 그리고 투자가 없다면 발전의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기업들이 기계나 로봇, 그리고 미래 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개인적 의견을 피력하며 좌파의 오픈프라이머리 토론에 끼어들었다.
 
이를 보면 프랑스 선거는 정책을 둘러싼 아이디어 경쟁으로 자유로운 설전을 벌이며 유권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대선주자들도 이제는 진정 달라져야만 한다. 선심성 포퓰리즘이나 바람잡이식 퍼포먼스가 아닌 신선한 아이디어로 정책을 만들고 논쟁을 불러 일으켜 사회를 바꾸는 동력을 생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대선도 지난 대선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탄식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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