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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호

What is to be done (by)?

처..천재?

2017-01-18 15:38

조회수 :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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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보통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말로 번역이 돼있다. 
 
절박한 상황을 탈피하고자 하거나 진중한 결정을 할때 자신이 처한 위치와 나아가야 할 길을 리더가 제시할때 보통 던지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표어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율리아노프가 한 말이다. 우리는 보통 '레닌'이라는 필명으로 기억하고 있다 .
 
1902년 스위스, 핀란드 등을 떠돌며 망명생활 중 집필한 이 책은 폭풍전야을 앞둔 위대한 순간을 너무나도생생하고 기운차게 묘사해 이후 정치적인 성향 따위는 잊어버리고 너도 나도 차용하는 문구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가지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말의 원래 의미와 우리가 이 말을 이해하고 있는 인식론적인 오해에 관한 것이다.
 
레닌이 이 책을 펴낸 이유는 당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의 암적인 존재를 쳐내는 것.
 
즉 좌익인척 하면서 시건방 떠는 '소아병'들과 언제든지 미꾸라지처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조직을 허무는 내부의 적을 제거하는 것이 혁명대오의 제1 과제라고 제시했다.
 
차르와 러시아를 노리는 제국주의는 둘째고 우물쭈물 방황하는 '가짜'와 전진적인 '진짜'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거사를 치를 수 있다는 논리다. 이후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명확히 갈라져 1917년 운명을 달리했다.
 
가족이든 회사든 마을이든 한 나라든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 운명적인 상황에 자주 쓰인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그 집단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물쭈물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공멸한 멘셰비키처럼.
 
또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말에 대한 동양과 서양에 대한 인식론적인 의식 차이다. 
 
러시아는 굳이 따지면 아시아 대륙에 포함되지만 언어나 문화는 서양과 흡사하다. 
 
What is to be done이라고 보통 말하지만 뒤에 by가 붙는다. 말그대로 해석하면 '어떠한 것에 의하여(by) 무엇을(what) 하게 되어지나(to be done)'라는 수동형 명제다. 
 
한국식 번역으로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자아주체적인 인식이지만 서양에서는 '무엇 때문에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수동적인 상태가 된다'로 여겨진다. 동양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받아들여 행동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서양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 내가 행동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는 전제가 있다. 
 
별 뜻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동양식 표현에는 내 의지가 들어간 '관념론'이 서양은 상황인식이 우선한 '유물론'적인 표현이 담겨 있는 것이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를 이어 역사적유물론을 완성했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생각과 이념, 사고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둘러싼 물질적인 조건과 환경의 변화로 인해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유물론'적 사고가 담긴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한국식 번역은 유물론적인 관점을 관념론적 시각으로 잘못 번역했다고 보면 될까?. 번역가의 뜻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헤겔의 관념론을 완전히 거꾸러 뜨린 유물론의 치열한 고민이 밑에 깔려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what is to be done by?'라는 말이 왜 탄생했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what is to be done by?'를 접하는 동양은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해야해?'라고 반문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서양은 '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야?'라고 고민하게 된다. 전자는 화두를 먼저 던지고 상황을 이야기하고, 후자는 상황을 먼저 인식한후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붉은 광장과 크렘린궁은 지금 맥수지탄과 같다. 2차대전에 몸을 던진 붉은 군대를 추모하는 불꽃만 휘날릴 뿐.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말'만 남았다. 춥다.
 
 
 
박민호 기자 dducks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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