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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혜

기획②국정교과서 무엇이 뭐가 문제길래…

독재 미화도 모자라 헌법까지 왜곡…사실은 없고 억지논리만

2017-0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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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윤다혜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여론이 거세자 교육부는 결국 학교 현장에 전면 적용하는 시기를 올해 3월에서 1년 미룬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국정 역사교과서를 완전히 폐기하라는 재야의 움직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무엇이 문제이고 왜 폐기해야 하나. 폐기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 역사교사 등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가장 문제가 된다는 현대사 부분에 대해서도 짚어봤다. (편집자주)
 
시작부터 논란
2017년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첫 순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가 그 제단에 바치기 위한 제물이라는 인식은 알만한 사람에게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2015 개정된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시기가 2018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2017년에 배포하겠다고 밀어붙이며 더 이상 소문이 아니게 됐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역사교육의 목적은 역사를 통해 학생들의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함양하는 것이지만 애초부터 박정희 예찬 교과서를 의도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령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비교육적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4일 역사학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기도가 처음으로 공개된 것은 지난해이지만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5년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교육현장의 전면적 거부로 0%대 채택율을 기록하자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옹호 세력들이 국정화 작업을 통해 추구한 것이 시종일관 친일·독재세력의 역사적 복권이자 수구세력의 정치적 결집이었음을 의미한다.
 
"국정화 옹호는 특권세력 결집 시도" 
최근 정부, 새누리당, 일부 수구 언론이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적 장점을 운운하며 국정화를 옹호하고 나선 것도 결국 탄핵 정국에서 반칙을 써서라도 지지세력들을 결집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해보려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결국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역사학을 권력의 시녀이자 정치적 도구였다"면서 "그런 면에서 국정화 추진·옹호세력의 역사의식은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의 역사의식과는 정반대의 대척적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거듭되는 공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밀실에서 복면 집필을 통해 교과서를 제작했다.
 
정 교수는 "결국 박정희 예찬 교과서라는 별칭이 붙게 된 국정교과서 목적은 비선에 의한 집필로 달성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라며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하는 것은 그러한 국민적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사 ‘오류 투성이’
역사학계 교수들은 대부분 국정 역사교과서가 기초적인 사실 오류가 많고, 사실을 선택적으로 서술해 본질을 왜곡하는 등 교과서로 사용하기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현대사 부분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현대사 부분의 집필에는 전문 역사학자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았으며,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 사회과학의 최근 연구성과들이 거의 무시된 채 집필됐다.
 
고등학교 한국사 검토본 VII장의 ‘1. 대한민국의 수립과 자유민주주의의 시련’을 보면, 첫 쪽(246쪽)부터 무지로 인한 사실오류와 의도적인 왜곡에 의한 사실오류가 반복된다. '만주를 거쳐 남하하는 소련군'이 미군보다 한반도에 먼저 들어왔다고 하는데, 소련군의 태평양함대는 연해주에서 동해를 통해 바로 함북으로 상륙하여 한반도에 먼저 들어왔다는 사실은 역사적 상식에 속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권력'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로 둔갑시킨 오류는 발표자가 지적한 바대로이며, 기껏 친절하게 설명한답시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는 '자본가들(부르주아)을 전면에 내세운' 정부라고 해설했다. 이는 혁명이론의 ABC도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다.
 
'조만식 연금' 해설 왜곡 의도적
그 다음 쪽에는 조만식이 '소련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자' 연금했다고 하는데, 조만식이 연금상태로 놓인 정확한 이유는 미국, 영국, 소련 등 연합국이 합의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아서이다. 이 결정이 발표되기 전까지 조만식과 소련군의 관계는 협조적이었다. 이는 의도적인 왜곡에 속한다.
 
김성보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국정교과서가 사실 오류로 가득 찬 교과서"라면서 "일례로 5·16 주도세력이 발표한 '혁명공약'이 소개됐는데, '반공 태세'라는 원문을 '반공 체제'로 임의로 바꾸었다. 원자료까지 집필자 마음대로 바꾸는 역사교과서가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주장의 위험성은 누누이 지적된 사항이다. 그만큼 심각한 또 다른 문제점은 검토본이 대한민국 수립의 정신 자체를 왜곡,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헌헌법은 그 기초자의 한 명인 유진오가 밝힌대로,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실질적·경제적 균등을 지향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중학교 역사 검토본은 제헌헌법이 단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의 원칙들'을 중시한 것으로 서술해 그 정신을 축소 왜곡하고 있다는게 역사교수들의 설명이다.
 
정부가 주체·국민은 종속
대한민국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검토본의 현대사 서술은 국가·정부를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고 국민·시민은 이에 종속된 존재로만 묘사하고 있다. 검토본에서 한국 경제성장의 공은 거의 전적으로 박정희라는 지도자 1인 또는 재벌에게 있고, 국민·시민은 단지 수동적인 존재로만 묘사된다.
 
김 교수는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교육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심사숙고해야할 지점은 다른 교과서도 아닌 역사 교과서라고 한다면 북한의 역사를 어떤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적어도 역사교과서라면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단지 ‘공산주의는 나빠요’라고 하는 이념적 잣대에서가 아니라, 남북한을 포괄하는 한반도 전체 차원의 근현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감
김 교수에 따르면 일제하에 왜 사회주의가 한국에 수용됐는지, 남북 분단의 국제적 배경은 무엇인지, 해방 후에는 왜 일제에 맞서 함께 싸웠던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자본주의 계열이 분열, 대립하게 되는지, 남북이 대치하는 속에서 남북의 독재정권이 어떻게 자신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적으로 몰아넣었는지, 분단 속의 적대적 공존이 어떻게 평화적 공존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근현대 한국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하도록 서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북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해도 학생들에게는 그저 북한은 나쁘니 상대하기도 싫고 이해하기도 싫다는 혐오감만 낳을 뿐이다. 
 
 
교육부가 고등학교 '한국사'와 중학교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지난해 11월28일 공개했다. 사진/뉴시스
 
 
윤다혜 기자 snazzy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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