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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 튼 '한류 문학'…분노 넘어 '연대'와 '공감'을 보다

초판본 열풍·채식주의자·탄핵 정국 등으로 돌아본 2016 출판계

2016-12-29 08:00

조회수 : 7,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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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2016년 국내 출판계는 ‘광장의 촛불’만큼이나 뜨거웠던 이슈들이 가득했다.
 
상반기의 ‘초판본 열풍’을 비롯해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은 이른바 ‘문학 한류’의 물꼬를 튼 사건이었고 한국 문학의 ‘르네상스’를 예고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동안 우리 사회를 분노케 했던 사회적 문제와 어수선한 시국을 반영한 정치 사회 비평서도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장기 불황의 여파로 팍팍한 현실 속에서 힘들어하는 개인의 자존감 회복, 스스로의 성찰을 이야기하는 책들도 서점가의 주류 카테고리가 됐다.
 
올 한 해 국내 출판시장의 흐름을 국내 온오프라인 서점의 판매동향과 평론가, 출판인의 의견을 취합해 3대 키워드로 되돌아 봤다.
 
복간본·채식주의자로 한국문학 약진
 
올해 한국문학은 활짝 웃었다.
 
연초부터 불어 닥친 초판본 시집 열풍이 그 시작이었다. 윤동주 시인의 기일을 맞춰 복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증보판의 인기에 한용운의 ‘님의 침묵’, 백석의 ‘사슴’ 등이 연이어 출간됐고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초판본의 인기는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등 다른 국내 시집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교보문고가 올해 1월1일부터 12월10일까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시 분야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5.7%나 급증했다.
 
시집의 인기에 이어 5월 ‘채식주의자’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소식은 국내 소설 분야로도 관심을 증폭시켰다. 조정래의 ‘풀꽃도 꽃이다’와 정유정의 ‘종의 기원’ 등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며 사랑을 받았고 김탁환의 ‘거짓말이다’ 등 시대정신을 담아낸 소설들도 큰 인기를 끌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국내 복간본 시집들은 현 시대에 읽어도 손색이 없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졌고 채식주의자는 세계인들이 주목할 만한 보편성으로 한국 문학의 자존감을 높인 역할을 했다”며 “전반적으로 장기적 침체에 시달렸던 한국 문학에 축복 같은 해였다”고 평했다.
 
정치·사회 비평서로 연대의식 공유
 
올해는 정치 사회적 대형 이슈들이 터지면서 관련 도서에 대한 관심도 특히나 컸다. 책을 통해 각 이슈에 따른 분노와 연대의식을 공유하는 정서가 급속도로 퍼졌다.
 
지난 5월에는 강남역 여대생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사회 곳곳에서 ‘여성 혐오’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페미니즘 도서가 각광받았다. 특히 페미니즘을 쉽게 풀어낸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기존 페미니즘적 시각의 편견을 깬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등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10월 이후에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탄핵 정국 등 정치권 이슈와 맞물려 관련 도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분노한 독자들은 보이는 현상 이외의 ‘날 것의 진실’을 알고자 했고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 주진우·함세웅의 ‘악마기자, 정의사제’ 등의 책으로 부패한 정권의 실체에 대해 접근하려 했다.
 
예스24의 11월까지 집계 결과 올해 정치·사회 분야 도서 판매량은 전년에 비해 20.5%나 급증했고 같은 기간 알라딘에서도 사회과학 도서 분야는 전년 대비 31% 증가했다.
 
백원근 대표는 “책은 사회의 공기를 반영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본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해였다”며 “정치적 시스템의 한계를 짚고 앞으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서적들이 주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불안한 현실 속 자존감 서적 부상
 
불안하고 각박한 현실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거나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을 모색하려는 독자들도 많았다.
 
특히 윤홍균의 ‘자존감수업’은 자존감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향상법 등을 담아 상처 입은 이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인간관계, 외부 환경 등과 자존감의 연관성을 분석하면서 많은 이들은 공감을 얻었다.
 
책을 펴낸 박경란 심플라이프 편집장은 “공허한 캐치프레이즈만 내거는 기존의 자기개발서보다 내면 성찰에 대한 실제적인 방법을 알려주고자 기획하게 됐다”며 “사건 사고가 많았던 사회 현상 속에서 자신의 안정감을 지키려는 흐름과 맞아 독자들의 관심도 높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과 정승환의 ‘나에게 고맙다’ 등도 세상의 무게가 벅찬 현대인들에게 자기 성찰의 메시지를 건네며 각광받기도 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자존감 서적들은 과거 위로만 주던 힐링 서적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독자들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개인의 가치를 드높이는 데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며 “철학적 기반을 차용하면서 험난한 세상 속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새로운 차원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했다.
 
백원근 대표는 “현실적으로 나를 지켜줄 사회 시스템이 부재한 각자도생 시대에 자신에 대한 믿음, 상실을 복원시켜주는 책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며 “하지만 그만큼 인간관계가 파괴적임을 대변하는 반증으로 해석될 수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작가 한강(오른쪽)과 번역작가 데보라 스미스. 사진/뉴시스·AP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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