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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훈

(르포)겨울이 야속한 사람들…달동네 ‘백사마을’의 겨울나기

7년 만에 오른 연탄 가격 부담…그나마 도움의 손길도 끊겨

2016-12-0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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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조용훈기자] “방안에 있으면 코 끝이랑 귀가 너무 시려”
 
추운데 왜 밖에 나와 있느냐는 질문에 비탈길 어귀에 앉아있던 오옥순(84·여)씨가 답했다. 오씨는 “이 동네에서 살기에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며 “올해 겨울도 후딱 지나가야지”라고 말했다. 
 
대부분 가정이 전기·도시가스 보일러를 사용하는 요즘 서울 중계동 불암산 아래 자리 잡은 백사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연탄에 의지하며 겨울을 보낸다. 마을 이름이 곧 지번(104번지)이기도 한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곳이다. 지난 7일 만난 주민 몇몇은 백사마을을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소개했다. 
 
백사마을은 과거 1960년대 도심 개발 때문에 쫓겨난 철거민들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는 약 1000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겨울에는 문 앞에 쌓여있는 연탄만 보고도 사람이 사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만큼 600여 가구가 여전히 연탄을 사용한다. 
 
사용하고 난 연탄들이 집 앞에 쌓여있다. 사진/조용훈 기자
 
백사마을 주민들은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탓인지 겨울이면 따뜻한 사랑방에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날도 주민 3~4명이 연탄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사마을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이형규(62)씨는 “기름보일러가 있긴 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씻을 때나 설거지할 때만 사용한다”며 “귀찮아서 그렇지 그래도 아직까지는 연탄이 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철물점은 운영만 하는 정도다. 벌이가 시원찮아서 아파트 경비일도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 같은 경우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에 속한다. 몸이 불편해 별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주민 대부분은 연탄 가격이 여간 부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백사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지어진지 40여 년이나 된 노후주택으로 아무리 연탄을 떼도 쉽사리 따뜻해지지 않는다. 이상호(85·여)씨는 “이 동네 집들은 다 보루쿠(구멍 뚫린 큰 벽돌)로 만들어졌다”며 “외풍이 심해 한겨울에는 밤에 잘 수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연탄 가격마저 올라 백사마을 주민들의 겨울은 더 추워졌다.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연탄 공장도 가격을 한 장당 373.5원에서 446.75원으로 19.6% 인상했다. 소매가격도 영향을 받아 한 장에 500원 정도이던 연탄 가격이 600원까지 올랐다. 김순자(76·여)씨는 “겨울 한번 나려면 연탄이 1000장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어떻게 하라고 가격을 올렸냐”며 “아껴서 떼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겠냐”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들에게 손길을 건네는 연탄은행과 자원봉사자들의 사정도 예년같지 않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31곳에 지회를 둔 연탄은행은 에너지 빈곤층 같은 소외계층에게 연탄을 지원하고, 후원과 봉사를 원하는 기업·단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연탄은행이 올해 확보해야 하는 연탄은 350만장이지만 현재까지 300만장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허기복 연탄은행 대표는 “겨울을 앞두고 최순실 사태가 터져 모든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소외계층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며 “기업과 국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계동에 자리 잡은 백사마을. 사진/조용훈 기자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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