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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혜

언론의 ‘껍데기’에 대하여

2016-11-07 10:21

조회수 : 4,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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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25일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사과를 한지 열흘 만이다. 열흘 사이 국정 농단의 주범인 최 씨가 구속되고 박 대통령과 최 씨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긴급 체포됐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검찰에게 엄정한 사법처리를 주문하기도 했다. 각계에서 대통령도 수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자 박 대통령은 모든 사태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면서 검찰 조사는 물론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다.
 
여당은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반면 야당은 대국민사과를 일방적 변명과 부실한 해명이라고 일축하면서 “진심어린 사과는 없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여야의 서로 다른 해석을 차치하더라도 이번 대국민사과는 지난 4년 여 동안의 행보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집권 이후 줄곧 굵직한 사건사고가 잇달았지만 직접적인 대응을 거부하던 청와대의 모습과 다르게 이례적으로 신속한 사과를 한 것이다. 더욱이 열흘 만인 4일 오전 박 대통령이 다시 공개 사과를 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MBN 캡쳐
 
 
열흘 만에 두 차례 대국민사과, 이례적이라는 평가 뒤따라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때도 청와대는 최 씨와의 관련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최 씨가 수차례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직접 수정한 사실이 지난 24일 JTBC 뉴스룸을 통해 드러나면서 청와대는 다음날인 25일 대국민사과를 발표했다. 그마저도 당일 오후 4시를 엠바고(시한부 보도 중지)로 걸면서 질의나 답변 없이 1분 30초 간 녹화한 영상을 내보냈다. 짧은 사과가 전파를 타자 여론은 상황을 모면하려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질타를 했다. 특히 트위터 등 SNS에서는‘순수한 마음’과 같은 문구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LA타임즈는 이를 ‘with a pure heart’로 직역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유행어가 됐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나 CNN 등의 언론은 이번 게이트의 주인공인 최순실을 라스푸틴에 비유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국내외로 비판을 넘어 풍자의 대상이 된 25일의 대국민사과는 박 대통령이 그간 보였던 행보와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2013년 윤창중 대변인 성추행 파문과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세월호 침몰 이후 14일이 지난 뒤에야 국무회의에서 사과를 하는 바람에 사고 직후 7시간 동안의 행방과 함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이전과는 다르게 즉각적인 사과를 하고 5일 뒤인 30일 대대적인 청와대 인사 개편이 이뤄지는 등 이례적인 움직임이 관측되면서 일각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뒤따르기도 했다. 
 
청와대 인사 논란에 다시 주목
최순실 게이트와 대국민사과의 후폭풍이 미처 잠잠해지기도 전인 지난 30일, 박근혜 대통령은 비서실장 등 총 8명의 측근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 개편에는 이원종 비서실장과 4명의 수석(우병우 민정수석, 김재원 정무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김성우 홍보수석)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비서관 3명(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이 포함됐다. 이상의 비서진이 대부분 최순실 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이들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특히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각종 비리 의혹과 함께 사퇴 압박이 거세졌는데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조선일보 간의 신경전이 발생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친정부 성향의 논조를 유지했던 조선일보가 우 전 수석의 사퇴를 종용하는 기사를 실은 것이다. 이에 맞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송희영 당시 조선일보 주필에 대한 불법청탁 혐의를 들춰냈다. 청와대와 유력 일간지의 갈등은 조선일보가 송희영 주필을 해임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로써 청와대는 조선일보와의 대립에서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횡령과 직권남용 등 우 전 수석의 비리 혐의가 마구 쏟아졌고, 그럼에도 그를 내치지 않는 청와대를 수상쩍게 보는 시선은 늘어만 갔다. 민정수석 교체에 대한 요구가 들끓었지만 박 대통령은 우 전 수석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고, 우 전 수석은 30일 청와대 인사개편이 단행되기 전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인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 전 수석의 막강한 힘에 주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하면서 청와대 인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제 3의 권력
최근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신경전은 단순히 한 고위 공직자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는 견해가 제기됐다. 한겨레의 9월 29일자 오피니언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에 의하면 조선일보 오래 전부터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활약했던 사실을 파악했고, 관련 불법 행위에 대한 취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보도를 하지 않은 것은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즉, 조선일보는 보수진영의 정권 연장을 위해 박 대통령에게 꼬리자르기(우병우 전 수석 사퇴)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포문을 열었던 한겨레가 취재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다녀간 흔적을 수없이 발견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최 씨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 비서진들을 내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자리를 보전해준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이에 조선일보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박 대통령에 투자하는 대신 새로 들어설 보수 정권에 투자하는 방편으로 청와대에 맞불을 놓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취재 결과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내년 대선까지 남은 일정을 고려해서 시기를 조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언론사들이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사건을 보도하고, 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지면서 조선일보도 하릴없이 특종 전쟁에 나선 것이다.
 
권력을 만드는 언론의 추악한 힘
조선일보의 말마따나 굴지의 민족지로서 정치·경제·사회적 정의를 옹호하겠다는 신념을 보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하더라도 의심하고 추궁할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지난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언론의 몸부림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을 통해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부회장이 97년 대선에서 특정 후보에게 자금을 조달하고 검찰에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삼성과 중앙일보는 범죄정황이 인정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점과 불법 도청에 의한 증거는 효력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무혐의 판결이 받았다. 재판의 결과는 비록 혐의 없음이었지만 이 스캔들을 통해 모두가 짐작만 했던 유력 언론과 정치권의 유착 관계가 드러난 것이다. 
 
언론, 껍데기를 벗어야 할 때
언론의 역할은 사실을 밝히고 알려서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틀, 프레임은 마땅히 있어야 한다. 프레임 없는 언론은 현상을 모방하는 찍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프레임이 말썽을 부린다. 누군가를 위한 프레임은 시야를 제한하고 원하는 것만을 찍어댄다. 그래서 정작 드러나야 할 것이 감춰질 때도 있다. 1967년 시인 신동엽은 허위, 겉치레는 사라지고 본연의 순수성만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껍데기는 가라’를 외쳤다. 왜곡된 시선을 강요당하는 지금, 언론에도 시인의 외침이 다시금 필요한 시점이다.
 
 
 
동지훈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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