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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현장에서)'송민순 회고록' 속 1.6%에 매몰된 대한민국

2016-10-1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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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부 최한영 기자
지난 16일, 퇴근 후 광화문을 찾았다.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뜻밖에도 대형서점 두 곳 모두 책이 없었다. 일시 품절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른 인근 대형 중고책 서점과 집 근처 동네서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30여 년간 국제정치 무대를 누비며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이끌었던 전 외교부장관 송민순의 외교회고록’. 책을 구입한 사람들은 이같은 출판사의 책 소개글과 저자의 이력에 끌린걸까. 아닌 경우도 많을 것이다. 전체 560페이지 중 9페이지(446~454), 비율로 치면 1.6%에 해당하는 내용을 두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갑론을박이 본의 아니게 책의 마케팅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해당 페이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던 2007년 11월 이야기를 다룬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기권 결정 당시 문 전 대표가 ‘남북경로로 북한의 의사를 확인하자’는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 측은 “이미 기권으로 결정한 사안을 북한에 통보만 했던 것”(더민주 김경수 의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그 틈을 헤집고 들어가 ‘북한의 종복(從僕·시키는 대로 종노릇함)’ 운운하는 지경에 이르자 문 전 대표가 정면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같은 논란 속에 책의 다른 부분은 묻히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송 총장은 “이 책은 북핵과 통일에 관한 것이다. 거기서 하나 뽑아서 정쟁 삼는 것은…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고 강조한다.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는 시각으로 봐달라고 말한다. 사실 문제가 된 문장의 전후내용만 들춰봐도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존중을 엿볼 수 있다는 독자들의 의견도 나온다. 송 총장은 얼마 전까지 우리 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도입 등에 대한 현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사람이다.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한 사실확인은 중요하다. 유력 대선주자와 외교수장까지 지낸 사람들의 기억이 엇갈리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자가 30여 년간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풀어낸 책 내용을 토대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해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아닐까. 이 와중에 우리 내부의 논쟁은, 언제나 그랬듯이 단편적으로 흐르고 있다.
 
“책 전체흐름을 봐야지 일부만 보면 안된다. 전체를 보면 알거다.” 자신을 찾아온 기자들에게 송 총장이 한 말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로 보인다. 오늘 퇴근길에 다시 한 번 서점을 들러야 할 이유가 명확해졌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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