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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경

"낯선 디자인 통해 옷과 브랜드의 존재 이유 찾아"

한현민 '뮌' 디자이너

2016-10-17 06:00

조회수 :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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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패션의 위상이 달라졌다. 소수의 스타 디자이너가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만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전 세계의 패션 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서울을 찾기 시작했다. 오는 18일 개막하는 '2017 봄·여름 헤라서울패션위크(이하 '서울패션위크')'에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해외 패션 관계자가 참석할 예정이다. 한류라는 문화적 흐름과 함께 탄탄한 실력을 갖춘 신예 디자이너들이 부상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뮌'의 한현민 디자이너는 세계 남성복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디자이너다. 국내 정상급 남성복 브랜드인 '우영미'와 '레이'에서 6년간 실력을 갈고 닦은 그는 지난 2013년 브랜드 '뮌'을 론칭했다. 지난 7월 '울마크 프라이즈' 아시아 지역대회에서 우승하고, 지난해 서울패션위크에서 글로벌 마케팅 지원 대상 10인에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실력파다. 서울패션위크 메인 컬렉션 데뷔를 앞두고 패션쇼 준비가 한창인 '뮌'의 작업실을 찾아 한현민 디자이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뮌'의 한현민 디자이너는 말 그대로 옷에 파묻혀 있었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리한 아담한 작업실은 옷과 가방이 촘촘하게 놓인 행거와 테이블에 점령당한 상태였다. 이도 모자라 벽에도 많은 옷과 가방이 걸려있었으며 아직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듯한 원단과 사진들은 바닥에 놓여있었다. 
 
지난해까지 서울패션위크의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수주회였던 '제너레이션 넥스트'에 참가했던 뮌은 올해 처음으로 메인 컬렉션에 서게 됐다. 2013년 봄 브랜드를 론칭하고 약 4년만에 이룬 성과다. 
 
패션쇼는 닷새, 리허설은 이틀 앞둔 지난 14일 오전 한 디자이너를 만났다. 그는 전날도 새벽 5시까지 작업을 하느라 집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인터뷰 직전 샤워까지 하고 나왔으나 피곤한 기색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요즘엔 계속 작업실에서 살고 있어요. 3주 동안 집에 못 갔네요. 지금은 피팅하면서 마지막 다듬기를 하고 있는데 리허설인 일요일 전까지 최대한 착장을 마치고, 쇼가 있는 수요일 전까지 수정을 완료해야 해요. 그래도 학생 때 쇼를 보러갔던 김서룡, 송지오 선생님과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패션쇼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낯섦'에서 찾는 옷의 존재 이유
 
그의 옷을 관통하는 철학은 '낯설게하기'다. 옷의 봉제 순서와 방법, 패턴 메이킹, 디테일, 소재 개발과 실루엣 등에서 새로운 방식을 택하고 작업한다. 기존에 의복을 만드는 관습과 과정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면서 입는 사람에게도 옷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낯설게하기는 원래 문학에서 나온 개념이에요. '내 마음은 호수요' 같은 은유법처럼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거죠. 저는 이걸 패션 쪽으로 가지고 와서 기본적인 옷인데 어느 한 부분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요즘 워낙 잘 만들고 저렴하게 나온 브랜드가 많아서 잘 만들어진 기본 옷을 만들 거면 굳이 브랜드가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기본 복식에서 좀 더 발전된 걸 해보자는 철학이에요."
 
이번 시즌에는 남성 재킷의 겨드랑이 아래 몸통 부분에 소매 같은 디테일을 넣거나, 사선 모양의 주머니 장식을 달고 실제 주머니는 숨겨놓는 식으로 옷마다 저마다의 의도를 담았다. 각각의 의도를 통해 그 옷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마련하는 것이다. 
 
뮌의 시그니처로 꼽히는 셀비지(원단 끝부분) 작업도 낯설게하기를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보통은 버리는 셀비지를 옷 안쪽도 아닌 바깥쪽에 둬 정보를 드러나게 하며 독특한 포인트로 만들었다. 셀비지 작업은 뮌이 '울마크 프라이즈(IWP)'에서 수상할 수 있게 해준 효자이기도 하다. 
 
울마크대회 결선 우승해 '뮌' 알리겠다
 
뮌은 해외에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미 영국과 중국에 진출해 있으며 올해에는 서울디자인재단의 지원을 받는 '텐소울' 프로젝트를 통해 이탈리아 밀라노와 프랑스 파리에서 팝업스토어를 오픈하기도 했다. 
 
"해외에 나가면 한국보다 호응이 좋아요. 한국은 트렌드에 따르는 경향이 강하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저가시장이 발달돼 있지만 유럽이나 중국은 고가 하이엔드 의류에 대한 저향력이 별로 없거든요. 패션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역사 깊은 패션하우스와 함께 편집숍에 들어가는 것은 좋은 바이어나 소비자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기도 하죠. 중국은 경제가 빠르게 발전해서 그런지 돈이 많고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요. 중국 시장에는 2015년 봄·여름 시즌부터 진출하게 됐는데 현재 꽤 중요한 포지션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고 있어요. 상하이나 광저우에 출장도 자주 가고 바이어도 많이 만나고 있어요."
 
해외시장에 나갔을 때 힘을 보태주는 것은 역시 한류와 선배 디자이너들의 성과라고 말했다. 
 
"한류가 끝물이라는 얘기가 나오지만 이탈리아나 중국 시장에 연예인 협찬 간접광고(PPL) 자료를 가져가면 다 알아봅니다. 예전에 우리가 홍콩 스타를 좋아해서 홍콩이 좋아졌던 것처럼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좋게 만들어져 있어요. 특히 유럽 쪽에서는 우영미 선생님이나 정욱준 선생님이 파리컬렉션에서 잘 해주셔서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에 대한 호감이 커요."
 
한 디자이너는 이번 서울패션위크를 마치면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최우선 과제로는 울마크 프라이즈 결선을 꼽았다. 
 
"울마크 프라이즈는 전 세계 패션 관계자가 주목하는 대회라 최선을 다해 브랜드를 많이 알릴 계획이에요. 저를 포함해 각 대륙에서 6명의 후보가 나오는데 몇 명 안 남았으니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브랜드에 굉장히 좋은 전화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번 서울패션위크를 통해서 많은 해외숍에 바잉이 되고 텐소울로 또 선정되는게 목표기도 하고요." 
 
"사진·영화도 아우르는 디렉터 되고파"
 
브랜드 론칭 전 몸담았던 '우영미'의 우영미 디자이너나 삼성물산에 들어가 '준지(Juun.J)'를 이끌고 있는 정욱준 디자이너를 존경한다는 한 디자이너는 그들처럼 브랜드를 크게 만들고 세계로 나가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브랜드가 커지면 디자이너보다는 디렉터로 자리를 잡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현재는 한 디자이너를 제외하면 뮌의 상주 인력이 2명밖에 없어 디자인과 원단 작업 등에 모두 직접 관여해야 한다. 하지만 추후 브랜드가 성장하면 디렉터가 돼 큰 그림을 설정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패션을 전공하기 이전에 그래픽과 사진 같은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던 경험을 살려 사진과 영화 까지도 아우르고 싶다는 목표도 전했다. 실제로 상당한 사진 실력을 갖춘 한 디자이너는 뮌의 룩북을 직접 촬영, 편집하고 있으며 다른 브랜드의 룩북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찍는 것을 패션 디자인을 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사진 쪽 작업도 계속 해나가고 배우고 싶어요. 죽기 전에 톰포드처럼 패셔너블한 영화를 만드는 게 최종적인 꿈입니다."
 
(사진제공=뮌)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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