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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진

(토마토칼럼)'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나라

2016-09-20 12:00

조회수 : 9,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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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힘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에서 비롯된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서 다수가 침묵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잘못을 지적하고 경종을 울려야만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불의했던 역사는 언제나 용기있게 반대 목소리를 냈던 이들에 의해 조금씩 정화되고 진보해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반대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지도층과 대중의 태도다. 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라고 무시하거나 본질을 벗어난 과잉해석으로 상대방의 의도를 묵살하고 공격하는 행위는 건강한 민주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최근 미국에서는 프로풋볼리그(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쿼터백 선수인 콜린 캐퍼닉이 국가 연주 때 기립을 거부하면서 애국심 논란이 벌어졌다. 캐퍼닉은 미국 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과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성조기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자신의 행동을 해명했다. 하지만 관중들은 캐퍼닉의 행동이 국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 않은 것이라며 야유를 퍼부었고, 그의 행동을 비난하는 이들과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캐퍼닉의 행동을 놓고 가타부타 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의 신념을 대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반응은 새삼 민주적인 사회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에 충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국가 연주 당시 기립을 하지 않은 캐퍼닉의 행위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는 소신을 표출하고자 헌법상 기본권을 행사했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그런 행동을 해 온 오랜 역사가 있다”는 말로 애국심 논란을 잠재웠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국민의례를 특별하게 여기기 때문에 캐퍼닉의 행동을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캐퍼닉의 행동은)공론의 장에서 논의해야 할 부분이 있고 젊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 많이 참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9.11 테러 15주년이 되는 날 열린 NFL 시즌 개막식에서는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다른 선수들의 동참 행위가 잇따르면서 호응을 얻었다.
 
캐퍼닉의 용기있는 행동과 오바마 대통령의 균형잡힌 시각은 국민들의 절규에 귀를 닫고 비판의 목소리에는 재갈 물리기에 바쁜 박근혜 정부의 행태와 대조되면서 우리의 현실을 더욱 개탄스럽게 만든다.
 
300명이 넘는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2년이 넘도록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않고, 박 대통령의 오른팔 노릇을 하는 민정수석은 온갖 비위 의혹이 쏟아지는데도 꿈쩍도 않는다. 이제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정치적 타협의 희생양 취급하며 국익을 운운하고 있다. 정부와 권력에 비판적인 이들은 누구든지 부당한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조직 속에서 불이익을 받는 현실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실이 독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민주주의의 암흑기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우리의 역사가 50년쯤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 한탄한다. 국민의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의 불통은 해외 언론에서조차 조롱거리가 됐다. 누구든지 부당한 현실에는 ‘아니오’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고, 권력자는 그들의 목소리를 천금보다 무겁게 받아들이는 그런 나라는 언제쯤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인가.

정경진 뉴스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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