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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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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시론)이순신과 선조, 그리고 박근혜

2016-05-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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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1592년 음력 4월13일. 424년 전 임진왜란이 일어난 날이다. 양력으로 올해는 5월19일이 된다. 4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 리더십은 임진왜란 당시 무능하고 무기력했던 조선과 달라진 것이 있을까. 만약 우리의 국정운영을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는 이순신의 눈으로 보면, 그는 40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환란을 겪은 일들은, 국정운영의 주체들이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기미와 변화를 애써 눈감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과 조정은 정말 임진왜란과 같은 위기가 올 줄 몰랐을까. 아니면 그 위기의 징후들을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회피하였을까.

당시 동원된 일본의 병력은 나고야에 주둔한 예비부대 10만990명과 선발부대 13만6900명, 후발부대 5만9200명, 그리고 수군 9200명 등으로 총 30만6290명이었다. 일본에서 이만한 대대적인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징후와 정보를 정말 조선은 몰랐을까. 선조가 임진왜란 전에 일본으로 사신을 보낸 것을 보면 그도 이런 조짐과 전쟁 기운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은 급격한 변화와 전쟁의 공포를 회피하려는 집단심리가 작동했다.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들은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정보를 중심으로 보고한 것이 아니라, 임금의 심기를 살피고 그가 좋아하는 쪽으로 의견을 끄집어냈을 것이다. 아니면 현지를 실제 다녀온 두 명의 사신이 대규모 전쟁준비를 전혀 상반된 의견으로 다르게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조정의 대신들도 내핍과 고통을 의미하는 전쟁 준비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집단심리에 매몰됐다. 무능하고 어리석은 조선의 왕과 조정은 일이년 후에 벌어질 일을 모르쇠로 집단착각에 빠졌다.

1392년 조선 건국, 그리고 200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 사이에 세계사적으로 더 중요한 사건이 있다. 1492년 스페인에 의한 지리상의 발견이다. 대항해 시대의 개막이었다. 1500년 출생한 카를로스 1세와 그 뒤를 이은 펠리페 2세는 16세기 100년 동안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1541년에는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 개발을 시작하였고 이 은을 대서양 항로뿐만 아니라 태평양 항로를 통해 필리핀 루손 식민지로 옮겼다.
 
은은 포르투칼 상인에 의해 중국 광동 등으로 수입되어 비단, 생사, 도자기 등 물품의 대금으로 사용되었다. 예수회 신부들은 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들어와 동아시아와 다른 세계관을 소개하였다. 임란 때도 이들이 왜장 고니시를 따라 조선까지 왔다는 설이 있다. 종자도에 표류한 상인들로부터 조총을 받아들인 일본은 당시 스페인을 잇는 세계 2위의 은 생산국이었다. 은 수입 1위국은 명나라였다. 임란 당시 명의 군사들은 한 달에 은 2냥을 받는 직업군인들이었다. 반면 조선의 사병들은 군역으로 징병된 의무병들이었다. 이들의 전투력이 어떻게 달랐을 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대항해 시대의 세계사적 격변을 조선의 조정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순신은 대항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겠지만 동아시아의 변화는 내다보고 있었다. 묘하게도 난중일기는 그 해 전쟁이라도 예감했는 지 1592년 전란이 시작되던 정월부터 시작된다. 지방군영의 수장에 불과한 그는 전란에 사용할 돌격선인 거북선을 4월12일 전쟁 발발 하루 전에 완성한다. 그리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라는 장계를 선조에게 보낸다.

이순신의 국가 리더십으로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400년 전과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2013년 이래로 글로벌 경제 위기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철강, 해운, 조선, 석유화학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였던 업종들의 연쇄 도산이 우려되고 있다. 올 2월 다보스포럼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구조의 전면적 재편을 예견했다. 중국경제의 경착륙이나 미국의 금리인상은 한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글로벌 경제의 위기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한국 정치는 400년 전 당쟁처럼 정파적인 이해를 넘지 못하고 있다. 당쟁의 중심에 있던 선조는 자신은 그 무리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유체이탈 화법의 원조였다. 지금 정당정치에서 이 유체이탈 화법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국무회의는 객관적 정보 이전에 선조의 심기를 살폈던 조선의 조정을 꼭 닮았다. 국방외교로 보면 400년 전 용산회담에서 명과 왜가 당사자이고 정작 조선은 제외되었던 것처럼 여전히 한국 정부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평생을 이순신을 연구해온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제 힘으로'라는 뜻의 자력(自力)을 이순신 리더십의 정수라고 집약한다. 400년 전 이 즈음에 조선은 대항해 시대와 그에 따른 동아시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정운영도 글로벌 변화에 400년 전 판박이처럼 둔감하다. 정부와 정당, 그리고 학계가 위기의 징후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순신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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