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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헌철

(토마토 칼럼)1528명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부터

2016-04-21 14:41

조회수 : 2,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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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1일. 평범한 가장이었던 안성우씨는 5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아니 생생히 기억한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그날 안성우씨에게 불행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임신 7개월이었던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이다.건강하던 아내는 이유도 없이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입원한지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병명은 급성호흡부전이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는 아내와 태아를 하늘나라로 보낸 것이다.
 
4월 급성 호흡부전을 동반한 중증 폐렴 임산부 환자 28명이 잇따라 입원했다. 의료진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같은 해 8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임산부 폐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안성우씨는 그때서야 아내와 아이를 떠나보낸 이유를 알게 됐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직접 구입한 가습기 살균제가 결국 아내와 태아를 죽였다는 자책감이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해 안성우씨 아내와 같은 이유로 사망한 사람만 28명에 달했다. 피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정부가 피해자 530명에 대한 조사를 벌여 이 중 217명이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의 상관성이 ‘거의 확실’하거나 ‘가능성이 높다’고 판정한 상태다. 이중 사망자만 92명에 이른다.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확인된 피해자만 1528명(사망자 228명 포함)에 이른다. 2014년과 2015년 정부에 의해 조사된 1·2차 피해자 530명(사망146명). 2015년 접수돼 조사가 진행 중인 3차 피해자 752명(사망79명). 2016년 4월4일까지 환경보건시민센터로 접수된 246명(사망14명)을 합한 숫자다(‘숫자로 본 가습기살균제 참사’ 발췌).

 

사망사·피해자가 이렇게 많지만 5년여간 그 누구도 이들에게 머리 숙여 깊이 있게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해 수사에 나서자 제조 및 유통업체중 한 곳인 롯데마트가 공식 사과하고 보상안을 발표했을 뿐이다. 눈치 보던 홈플러스도 뒤따라 보상의사를 밝혔다. 생명을 앗아간 기업의 태도라 할 수 없다.
 
5년이란 시간이 걸린, 너무도 늦은 수사이고 눈에 뻔히 보이는 형식적 사과이다. 피해자들이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더욱이 이번 사태의 최대 가해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의 태도는 비도덕적이다 못해 추악(추접+우악)스럽다.
 
사건의 사망자 70%(103명)가 사용한 제품(옥시싹싹 NEW 가습기당번)을 제조·판매한 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는 21일 오후 홍보대행사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내용은 한심하다.
 
2014년 발표한 50억원 기금에 더해 50억원을 추가로 출연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의도적 증거 인멸과 더불어 피해자와 유족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며 보상 관련 합의를 제안하다 언론에 들킨 이후 보인 첫 반응이다. 억지스럽고 개탄스럽다. 롯데마트가 18일 100억원을 약속하자 이에 맞춘 듯 금액을 올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103명의 목숨을 빼앗은 기업이 제시한 금액이 22명의 사망자를 낸 기업의 출연금과 똑같다는 것 역시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그리나 진정 우리를 분노케 하는 대목은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기자회견도 없는 달랑 이메일을 통한, 변명으로 일관된 사과문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과임을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피해자 가족 안성우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려는 것이 아니며 진정성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피해자들 앞에서 공개사과 해야 할 것이다. 진심으로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 대책이 있다면 판매 기업 모두 만나서 공동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구 설립해서 같이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이 서린 일갈이다. 이들의 외침을 귀 기울여 철저한 사고조사는 물론 차질 없는 후속대책, 진정한 사과를 바란다.
 
정헌철 생활부장 hunchu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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