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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피플)"재벌개혁으로 '삼성 리스크'에 대비해야"

"소유지배구조가 삼성전자 혁신에 장애"

2016-03-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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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이다. 정부 주도-재벌 중심의 발전 전략이 한계에 도달했으며,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복지제도가 갖춰진 사회통합적 시장경제체제의 정립이라는 과감한 제도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2003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와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임 중이다.
 
그가 최근 노키아와 핀란드 사례를 통해 본 삼성의 미래,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책을 펴냈다.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이라는 책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이론’의 희생자로 기업의 몰락이 국가 경제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가 재벌개혁과 같은 구조적인 조치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해소해야 할 마지막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그룹과 같은 ‘단일 기업 경제(one-firm-economy)’라고 불렸던 핀란드의 노키아를 사례를 통해 삼성전자와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 박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사진/김영택 기자
 
최근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 길'이라는 책을 펴냈는데요.
 
삼성그룹은 지난해 4월 기준 6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국내 최대 재벌이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보적이다. 지난 2014년 기준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303조원이고, 자산총액은 623조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GDP가 약 1485조원이었다.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GDP 대비 20.4%에 달할 정도다. 한국경제에서 삼성은 독보적인 지위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삼성그룹의 영업이익의 70%를 차지하고 있는데, 자칫 삼성전자가 무너질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는 얘기다. ICT산업은 기술혁신이 빠르게 일어나고 단절적 혁신이라고 일컫는다. 판을 뒤집는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 시장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산업이다. 예를 들어 IBM이 비즈니스 컴퓨터를 만들었다가 PC혁명에 휩쓸려 망하기도 했고,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했다. 10년 전까지 아무도 IBM의 아성이 깨질 것으로 보지 않았다. 또 마이크로소프트도 모바일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애플, 구글 같은 기업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 1996년 CDMA 휴대폰을 세계 최초로 생산하면서부터다. 여기에 SGH-600이라는 GSM 휴대폰을 성공적으로 유럽시장에 출시하면서 세계 3위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ICT산업의 경우 기술혁신을 통해 빨리 성장했다가 빨리 몰락하는 대표적 산업이다. 창조적 파괴가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다. 때문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1등 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창조적 파괴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고,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내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
 
핀란드 노키아의 몰락을 통해 ‘단일 기업 경제’, ‘창조적 파괴 이론’으로 설명했는데,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노키아는 천문학적인 돈을 R&D 투자에 쓰고, 과감한 혁신을 선도할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다. 또 신기술과 관련된 기업을 인수하거나 다른 기업들과의 합작회사도 설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의 도래와 그 중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한 휴대폰 제조사는 애플이 아닌 노키아였다.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한 기업도 구글이 아닌 PC OS 절대강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노키아는 일찍이 콘텐츠의 중요성도 인식하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 휴대폰 시장이 하드웨어 중심에서 콘텐츠와 서비스 중심으로 변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전략적인 제휴와 인수합병을 통해 앱스토어 사업 역량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노키아는 2010년 이후 불과 3년만에 급격히 몰락하고 말았다. 노키아의 몰락은 혁신적인 산업에서 창조적 파괴가 도전 기업들에 의해 일어나고 기존의 지배적 사업자가 소멸하는 바로 그런 과정이었다. 다시 말해 창조적 파괴는 인식이나 전략의 실패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지배적인 사업자는 판을 뒤집는 단절적 혁신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다는 경제적 법칙임을 노키아의 몰락이 선명히 보여준 것이다.
 
노키아의 몰락을 사례로 삼성의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노키아와 삼성전자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닮은 점은 삼성전자와 노키아는 ‘창조적 파괴’라는 카테고리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고, 다른 점은 몰락했을 때 일어날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다.
 
노키아는 핀란드 내에서 2만5000명이 살로라는 지역에서 근무했고, 연구직이나 관리직이 대부분이었다. 10만명은 해외에서 고용됐다. 노키아가 망했을 때 살로 지역만 실업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사회적 문제가 됐다. 하지만, 브릿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창업을 할 수 있는 교육을 시켰고, 자본금 4000만원 정도를 퇴직자들에게 나눠줘 창업자금으로 지원했다. 여기에 노키아 특허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융자도 저리로 마련해줬다. 쉽게 말해 핀란드의 노키아는 창업할 수 있도록 국가나 기업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는 얘기다. 자연히 생활에 대한 부담이 줄어 스타트업이나 벤처 기업들이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줬다. 모두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의 경제상황을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내다봤다. 언론 역시 부정적인 시각으로 기사를 썼다. 하지만, 막상 노키아에 따른 충격은 크지 않았다. 물론 실업률과 국가성장률은 낮아졌지만, 생각보다 충격이 덜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전세계 30만명 중 국내에 10만명이 근무하고 있다. 노키아가 대부분 전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 생산기지를 아웃소싱 했다면, 삼성전자는 내부 수직계열화를 통해 이뤄진 구조다. 주로 베트남에 생산기지가 있는 삼성전자는 국내 계열사들이 부품을 보내고, 하청업체들도 국내에 있다. 삼성전자가 몰락했을 경우 실업률이나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노키아 보다 훨씬 크다. 또 국내 흡수가 쉽지 않다. 관리 연구직 이외에 생산직도 많아서 더욱 충격이 크다. 실업급여, 브릿지 프로그램 등 스타트업을 통한 지원 역시 안 할 것으로 본다. 오히려 연구원이나 기술직 등 유능한 인력들은 중국이나 해외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는 이미 ‘위기’를 인식하고, 사업다각화 등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는데요. 삼성의 위기, 본질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지난해부터 바이오 시밀러, 자동차 전장 등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있지만, 예측하기 쉽지 않다. 자리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자리를 잡는다 해도 그 이전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물론 삼성이 몰락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해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절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미리 여러 가정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삼성전자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은 과거 삼성의 초고속 성장을 이끌었다면, 현재와 미래에는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모방을 통한 성장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다른 기업들보다 훨씬 빨리 제품을 만들면서 시장 요구에 신속히 대응했다. 하지만, 혁신이 필요한 시기에 수직계열화는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는 많은 IT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수직계열화를 단순화 시킬 필요가 있다. 몸을 가볍게 해야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전자 역시 몸집을 줄여 민첩하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줄게 된다. 이는 총수 일가와 경영 문제가 상충될 수 있다.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익을 취하기 위해선 몸집이 커야 하지만, 경제적 집중이 분산되면 편익, 사익을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소유지배구조가 삼성전자 혁신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가 ‘삼성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소유지배문제 혁신에도 삼성전자가 몰락하면 전자 계열사뿐 아니라 순환출자로 엮인 금융부분까지 한꺼번에 망할 수 있다. 금산분리가 안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위기가 전 계열사로 전이돼 돌아온다. 중소 협력사 등의 실업률이 폭발적으로 늘고, 삼성의 은행 대출도 부실화될 수 있다. 또 국민연금 기금과 국가 세수에 막대한 손실을 일으키고, 주식시장에서도 엄청난 혼란이 올 수 있다. 외국 자본이 돈을 빼 나가면서 외환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
 
삼성전자의 몰락이 가져올 사회적, 경제적인 파장은 노키아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삼성전자의 몰락이 삼성그룹 수직계열화와 계열사간 출자구조를 통해 삼성그룹의 몰락으로 전이되고, 삼성그룹의 몰락은 국가경제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
 
우선 삼성 리스크에 대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선 삼성생명의 삼성전자에 대한 과도한 출자와 삼성물산의 삼성생명에 대한 과도한 출자 및 지나친 수준의 자사주 보유를 막아야 한다. 동양그룹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총수일가는 부실을 막기 위해 금융 계열사들을 불법 또는 편법적으로 동원한다. 동반부실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는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또 지난 2013년 이스라엘의 재벌개혁법안인 ‘경제력집중법(Concentration Law)’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의 대기업 집단 및 재벌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삼성 리스크에 대비할 뿐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해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 상황이 극단적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할 재벌개혁이 시급하다.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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